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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수몰 예정지 못떠나는 주민들/ "이주단지, 언제쯤 완공될지… 올 겨울이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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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수몰 예정지 못떠나는 주민들/ "이주단지, 언제쯤 완공될지… 올 겨울이 고비"

입력
2011.09.2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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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이상 북한의 수공(水攻)은 우리에게 항시적인 위협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경기 연천군에 국내 최초의 홍수조절지 군남댐을 건설했고, 한탄강댐을 조성 중이다. 국가안보를 위한 조치에 원주민들은 이주라는 희생을 치러야 했지만, 일부는 아직 이주를 못하고 있다. 그들은 왜 수몰 예정지를 떠나지 못할까.

28일 오전 한탄강댐 수몰 예정지인 연천군 연천읍 고문2리. 드문드문 세워진 집들은 폐허처럼 변한 채 잡풀에 둘러싸였고, 주변은 쓰레기로 넘쳤다. 거리에는 이따금 개들만 무리 지어 돌아다닐 뿐 사람 그림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한탄강이 내려다보이는 목 좋은 자리라 항상 붐볐던 식당도 이젠 간판만 덩그러니 남았다. 최고 명당이었던 강가 평상들은 거미줄과 쓰레기로 뒤덮인 흉물로 변했다.

현재 한탄강댐 공정률은 40% 남짓. 주민이 120가구에 달했던 고문2리에는 오매불망 이주단지 완공을 기다리는 10여 가구만 남았다.

신간난(73ㆍ여)씨 가족은 4년 넘게 비닐하우스에서 살았다. 수몰지 보상이 이뤄지기 전인 2007년 집이 화재로 전소됐지만 한국수자원공사는 "보상 전이라 가건물은 물론, 컨테이너도 안 된다"고 했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터라 궁여지책으로 비닐하우스를 쳤다. 그 안에서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와 싸우고, 여름에는 근처 개울로 찾아가 햇빛을 피하고 밤에만 집에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당초 2009년 말~2010년 초 완공 예정이었던 이주단지는 아직도 공사 중이다. 신씨는"보상 뒤 4년이 흐르는 동안 땅 값과 건축비 등이 너무 올라 억울하고, 앞으로의 생계 대책도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비닐하우스 생활을 보다 못한 아들 김용중(42)씨는 이달 초 수몰예정지 밖에 임시거처를 마련해 부모를 모셨다. 비닐하우스 집에는 매일 두 번씩 찾아가 소들에게 먹이를 주고 작물을 돌보고 있다. 이주단지가 늦어진 데 대해 수공은 "도시관리계획 변경 등 행정절차를 거치면서 착공도 지연됐다"고 해명하고 있다.

마을에서 사람들이 사라지자 그 자리는 들짐승들이 차지했다. 사방에 쥐가 들끓고, 멧돼지와 고라니를 비롯해 뱀까지 설쳐댄다. 김씨도 지난 겨울 집 뒤에서 멧돼지 떼와 마주쳐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는 "매일 밤이 동물과의 전쟁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가동에 들어간 군남댐 수몰민 중에도 아직 떠나지 못한 3가구가 연천군 중면 횡산리의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일부 수몰민들은 보상금을 합쳐 땅값이 싼 민통선 안에 공동으로 땅을 샀지만 경사가 심해 집을 지을 수 없는 곳이었다. 집을 못 짓고, 돈이 없어 떠날 수도 없는 이들에게 컨테이너는 마지막 보루였다. 지난해 6월부터 아들, 초등학생 손녀 둘과 함께 거주하는 김모(73ㆍ여)씨의 컨테이너 앞에는 겨울에 쓴 연탄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사람이 안 사는 줄 알고 종종 출입문 앞에 차를 세워놔 일부러 치우지 않는 것이다. 김씨는 "죽지 못해 산다"며 혀를 찼다.

말이 수몰민이지 김씨가 살던 집터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곳에 그대로 있다. 100년 빈도의 홍수 때만 물이 차는 곳이라 어쩌면 영원히 잠기지 않을 지도 모른다. "수공이 올해 말에는 컨테이너를 치운다는데 큰일이다. 우린 갈 데가 없다." 김씨의 쓸쓸한 시선은 수십 년간 살았던 길 건너 옛 집터를 향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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