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싱가포르의 관광 명소로 손꼽혀온 주롱(Jurong)섬. 최근에는 싱가포르 정부가 이곳을 대규모 석유물류기지로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서고 있는데, 이중 대표 시설로 꼽히는 해저 석유비축기지를 현대건설이 도맡아 건설하고 있다. 사업비 7억1,400만달러(약 8,000억원) 규모의 이 사업은 주롱섬 앞바다 해저 130m의 지하 암반을 뚫고 925만 배럴의 석유를 비축할 수 있는 거대 비축기지를 짓는 프로젝트로, 최첨단 건설공법과 최신 장비가 투입되는 대표적인 해외 고부가가치 공사로 꼽힌다.
#2.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의 메카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다른 중동 산유국과 비교해 입찰단계부터 참여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곳에서 대림산업은 최근 총 2조원에 달하는 석유화학 플랜트 5개 프로젝트를 잇따라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사우디 동부의 주베일 산업단지에 세계 최대 규모로 지어질 석유화학 생산 복합단지를 건설하는 매머드급 고부가가치 공사로, 대림산업은 설계와 구매, 시공관리 용역까지 모두 책임지고 오는 2014년 12월까지 공사를 진행한다.
플랜트 사업은 해외수주 공사의 대표 공종(工種) 가운데 하나로 국내 건설사의 해외수주에서 가장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사업 분야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해외에서 따낸 공사 10건 가운데 8건을 플랜트가 차지할 정도로 국내 건설사들에겐 '효자 상품'이다.
특히 고유가 추세를 타고 향후 1년간 중동지역 석유ㆍ가스 플랜트 부문에서 약 540억달러 규모의 공사 물량이 쏟아질 예정이다. 지난해 국내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거둔 수주실적 총액인 472억4,991만달러를 훨씬 웃도는 수준의 발주 물량이다.
중동 산유국의 플랜트 발주 물량이 늘어나면서 국내 업체들은 과거 노동집약적 수주 경쟁에서 탈피해 고부가가치 사업을 위주로 선별 수주하는 등 기술력을 앞세운 고품격ㆍ고난이도 공사에 도전하고 있으며, 곳곳에서 괄목할만한 수주 성과를 올리고 있다.
현대건설이 올 연말 준공할 예정인 13억달러 규모의 카타르 천연가스 액화정제시설(GTLㆍGas-to-Liquid)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플랜트 사업이다. GTL사업은 일본ㆍ유럽 등 일부 업체가 독점적으로 수행해오던 공정으로, 오랜 기간 해외건설 경험을 쌓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단순 시공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국내 건설업계가 선진 국가 수준의 기술력을 갖췄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GTL사업은 입찰 참가조차 어려운 핵심 공사"라며 "이런 고부가가치 공사를 수주할 수 있다는 것은 발주처로부터 그만큼 기술력을 인정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대림산업도 정유ㆍ가스플랜트 분야에서의 수주 우위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GTL사업과 이산화탄소 포집ㆍ저장(CCSㆍCarbon Capture & Storage)사업 등을 해외 사업분야의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림산업은 GTL 사업 분야 진출을 위해 현재 1BPD(하루 1배럴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급 시범 플랜트 건설에 대한 기술자문과 운전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이후에는 1만BPD급 상용화 플랜트 건설에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에너지 발전 플랜트 분야도 대림산업이 주목하고 있는 시장이다. 대림은 단순 플랜트 시공뿐 아니라 플랜트 운영분야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이미 국내 최초로 민간 상업발전시설인 포천복합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시작함에 따라 플랜트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다른 업체에 비해 앞서 축적하게 됐다"며 "경제개발 붐으로 전력 부족현상을 겪고 있는 중동과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 에너지 발전사업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 유라시아 터널 수주 등 '중동·플랜트 편식' 탈피
우리 건설업체들은 올해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정정 불안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해외 수주액 중 이들 지역 비중이 절반을 웃돌 정도로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우리 업체들은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플랜트 건설 일변도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SK건설은 2월 국내 건설사 최초로 해외 해저터널 시공을 맡아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연결하는 길이 14.6㎞ '터키 유라시아 터널' 공사에 착수했다. 총 사업비 11억달러로 리비아 대수로 공사 이후 한국기업이 해외에서 벌이는 최대 토목공사다.
SK건설은 3월 태국에서 1억1,700만달러 규모의 가스플랜트 공사를 수주했으며, 이어 싱가포르에선 지하철 도심선 3단계 공사 중 930구간 공사를 따냈다. SK는 중남미지역으로도 활동영역을 넓혔다. 9월 초 파나마 최대 화력발전소인 '파코(PACO) 플랜트' 공사(6억6,200만달러 규모)를 수주했고, 앞서 8월에는 하루 생산량 30만배럴 규모의 에콰도르 마나비 정유공장 신설 프로젝트의 기본설계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현대건설도 지난해 초 알제리와 카자흐스탄에 지사를 신설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지사를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우건설은 베트남 개발사업을 적극 추진 중이며 향후 남미, 옛 소련연방 국가, 이라크 등의 신규 시장 개척을 통해 해외사업을 다변화할 방침이다. 쌍용건설은 이미 아프리카 적도 기니에 진출해 대통령궁 부속건물 공사 수주를 앞두고 있다.
국내 건설업체들은 해외시장에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플랜트 비중을 줄이는 등 사업 다각화도 꾀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 자료(2009년 기준)에 따르면 국내 7대 건설업체 해외매출에서 플랜트 비중은 87%에 달한 반면, 미국 건설전문지 ENR이 선정한 세계 225대 건설사의 경우 정유ㆍ석유화학 플랜트(23.8%), 교통시설(29.3%), 건축(22.4%) 등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GS건설은 신사업 분야 발굴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오일샌드 등 비(非)전통유(油), LNG 액화, 석탄기화기술 분야 등 다양한 분야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미 지난해 캐나다 오일샌드 시설을 수주했고, 석탄기화기술을 활용한 호주 요소비료 공장 건설도 수주했다. 특히 요소비료 공장은 도급사업비만 28억8,000만달러에 달해 국내건설사의 호주 건설프로젝트 중 최대 규모다.
이는 GS건설이 올해 초 수주목표 16조2,000억원 중 절반 이상인 8조8,000억원을 해외에서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해외영업을 강화하면서 이룬 성과다. GS건설은 이미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이 주로 발주하는 공공 인프라 시설공사 및 도급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플랜트 사업본부에만 있던 해외영업지원팀을 토목ㆍ건축 사업조직에도 신설했다. GS건설 관계자는 "중동에서 벗어나 중남미ㆍ아프리카 시장으로 다변화와 함께 성장동력을 이끌 수 있는 사업을 계속해서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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