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저녁을 쉽게 '도가니'로 결정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공지영 원작의 영화 '도가니'에 대해 앵커의 격양된 목소릴 들으며 퇴근한 탓인지, 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 탓인지 모르겠지만. 소의 무릎 뼈를 도가니 뼈라고 한다. 그 도가니 뼈를 푹 고아서 내는 것이 도가니탕이다.
찾아간 도가니탕 전문 식당은 오가는 사람들이 보이도록 길가 쪽으로 무쇠 가마솥을 몇 개나 걸어놓고 도가니 뼈를 펄펄 끓인다. 그 모습을 보고 평소라면 뜨거운 식욕을 느꼈겠지만 그날따라 진국이 끓어 넘치는 그 솥이 영화 도가니를 보는 듯 섬뜩하다.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도 도가니라 한다.
도가니에서 도가니가 끓는다. 도가니에는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뜻도 있다. 영화 도가니를 보며 우리 사회가 뒤늦게 광주 인화학교 사건에 대해 분노의 도가니에 빠져든다. 도가니탕은 끓는 상태로 손님상에 나온다. 그때가 맛의 정점이다.
식으면 국물에 쇠기름이 앉는다. 그동안 그 사건은 기름이 두껍게 앉은, 차갑게 식어버린 도가니탕이었다. 그것이 영화 도가니를 통해 다시 끓는다. 나는 도가니탕을 먹으며 궁금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는가? 법이, 정치가, 언론이 간과하고 넘겨버린 그 시간들도 도가니탕 감이다. 사실 이 도가니도 시간이 지나면 또 기름이 앉고 식어버리겠지만.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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