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분노, 그리고 슬픔. 요즘 최고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도가니'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다. 광주의 청각장애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 실화를 소재로 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치를 떤다.
장애학생들을 돌봐야 할 교장과 교직원들이 오히려 아이들을 짓밟고, 힘있는 자들이 똘똘 뭉쳐 그 인간 말종들을 감싸고,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을 보면서 격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끝내 정의가 바로서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게 떠나는 주인공 교사의 좌절감을 지켜보는 마음은 무겁고 슬프다.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의 성분에는 죄책감도 들어있다. 무관심, 외면, 방관이 부끄러워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이들아.
영화 '도가니'가 불러일으킨 거대한 사회적 공분은 사건 재수사와 함께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관련 법 개정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냉소적인 반응도 있다. "6년 전에 알려진 사건인데, 그 때는 조용하더니 왜 이제 와서 호들갑이냐. 이번에도 잠깐 떠들다가 잠잠해지겠지."
비아냥이 섞인 이 가시 돋친 말이 가슴에 와 박히는 것은, 장애인 인권에 관한 우리 사회의 현실과 인식이 한참 뒤처져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 '위험한 정신지체 장애인과 한 곳에 살 수 없다'며 이사를 강요한 아파트 주민 2명에게 유죄를 선고한 21일 수원지법 판결을 보라. 그 장애인 가족은 2년 간 시달린 끝에 결국 이사를 갔다. 장애인을 짐이나 혹처럼 여기는 사회에서 장애인 가족들은 죄인처럼 산다.
보통 사람들이 장애인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흔하다. 집값 떨어진다고 자기 동네에 장애인 시설 들어오는 것을 결사 반대하는 주민들은 분명 이기적이지만 악당은 아니다. 중증 장애인을 보고 "저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사람들, 장애아를 안쓰럽게 보면서도 자기 아이 학급에 지적 장애 아이가 있으면 수업에 방해 된다며 내보내라고 요구하는 학부모들, 지적 장애를 가진 친구를 집단 따돌림하는 아이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는 수없이 가슴이 찢어진다.
장애인은 돈벌이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기도 한다. 장애인시설 운영자가 민간 후원금이나 국고 지원금을 빼돌려 치부를 한 예는 많이 보도됐다. 선거철만 되면 장애인 시설을 찾아가는 정치인은 얼마나 많은가. 서울시장 후보인 한나라당 의원은 26일 다 큰 중증장애 소년을 방송 카메라 앞에 벌거벗긴 채 씻긴 목욕 봉사로 욕을 먹었다. "촬영을 요청한 게 아니다, 카메라가 통제가 안 됐다"고 해명했지만, 그보다는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하는 게 옳을 것이다. 따라들어온 기자들에게 "촬영하지 말라"고 말했어야 한다.
인권운동가들은 '도가니' 같은 사건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폭행, 착취, 인신매매 사건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알려지지 않은 게 더 많을 것이다. 한두 해 된 일도 아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소녀를 한 동네 어른들이, 한 지역 고등학생들이 집단 성폭행한 사건도 있다. 판단력이 떨어져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장애 소녀를 성 노리개로 삼은 이들에게 법은 "피해자의 적극적 저항이 없었다" "다른 전과가 없다"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자주 관용을 베풀곤 했다.
'도가니'는 불편한 영화다. 분노하라, 행동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제 움직일 때다.
오미환 문화부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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