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침울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주 제66회 유엔 총회에 참석하기위해 뉴욕을 방문 중 '양심의 호소 재단'이 수여하는 세계지도자상을 수상하고 돌아왔건만 축하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물러나고,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가 강하게 몰아쳐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가 부활하는 경제의 전시 상황이다.
그런데 청와대를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지속적으로 터지고 있는 친인척 측근들의 비리 소식이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구속되더니,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SLS 그룹으로부터 수억 원을 받았다는 폭로로 어수선하다. 최근 이 대통령의 사촌형에 대한 검찰 수사에 이어, 대통령의 사돈이 거액을 편취한 사실이 확인되는 등 친인척 비리도 불거지고 있다.
공염불 된 "권력누수 없다"는 약속
"최초로 친인척과 측근 비리가 없는 정권으로 남겠다"는 국민적 약속을 여러 차례 해온 만큼 최근 대선 캠프나 청와대 참모 출신들이 비리 의혹과 관련해 줄줄이 거명되는 상황에 이 대통령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권력형 비리를 신속하고 완벽하게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과거 정권들이 임기 말만 되면 측근 비리로 무너졌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레임 덕 현상을 차단해야겠다는 의지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하면 레임 덕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자연스런 현상이다. 역설적으로 레임 덕이라는 정치적 수사(修辭)가 우리 귀에 낯설지 않게 된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그 만큼 발전했다는 반증이다. 쿠데타와 혁명에 의한 정치권력의 단절 속에서 레임 덕이라는 정치적 수사는 존재의미가 없다. 문민정부로부터 네 차례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했기에 레임 덕 현상을 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오리의 뒤뚱거리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귀여울 수 있지만, 한 발이 다쳐 절룩거리는 레임 덕의 모습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비정상적 절름발이 오리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오리에게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변의 모든 정치행위자들이 치유에 힘써야 한다. 건강한 오리는 정치발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우선 청와대는 측근비리를 권력누수 현상과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고 처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친인척 측근의 권력형 비리는 엄정하게 법으로 심판하고, 국정은 국정대로 의연하고 담담하게 수행해야 한다. 측근비리가 돌출하면 권력누수현상이 가속화 될 것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감싸거나 개인비리로 축소하려는 것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동시에 친인척비리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역시 권력누수를 심화시킨다.
같은 맥락에서 권력누수를 더디게 할 수 있는 집단은 결국 청와대의 측근이다. 청와대 수석, 비서관, 행정관들부터 초심으로 돌아가 소위 순장조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국정운영 다잡는 계기 만들어야
임기 초 대통령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만 임기 말이 가까워지면 하나, 둘 떠나는 것이 정치현실이다. 대통령이 외로움을 느끼지 시작할 때 측근의 헌신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그만큼 보람도 크지 않겠는가. 사실 앞으로 남은 이 대통령의 1년 5개월 임기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시작한 일이니 반드시 임기 안에 서둘러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는 짧게 느낄 수 있겠지만, 차기 정부가 맡아서 처리할 것이라는 여유를 갖는다면 꼭 필요한 새로운 사업은 시작해야 한다. 청와대는 침울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권력누수는 있을 수 있어도 국정운영의 위축과 단절은 있을 수 없다. 이 정부를 위해서뿐 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국리민복을 위해서 그렇다. 할 일이 산적해 있지 않은가.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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