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분노보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9일 오후 한국일보를 찾은 황동혁 감독은 영화 '도가니'에 쏟아진 사회적 관심이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기지도 않은 영화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너무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져 얼떨떨하다"고 했다. 이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에 대한 법적 제도적 조치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영화 연출은 어떻게 맡게 됐나.
"2009년 12월 영화 연출 제의를 받았다. 실화를 다룬 전작 '마이 파더' 때문에 제의가 들어온 듯하다. 그리고 소설을 봤다. 눈물이 앞을 가려 읽다 덮다를 반복하며 일주일 걸려 읽었다. 이걸 어찌 영화로 찍을 수 있나 하는 걱정이 앞서 제작사에 자신 없다고 말했다. 한 달 정도 고민 끝에 연출을 결심했다. 불편하지만 여운을 남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누군가를 선동하고 싶진 않았다."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울 텐데.
"우리 국민은 어떤 이슈에 너무 빨리 관심을 가졌다가 다른 일이 생기면 그쪽으로 눈길을 옮긴다. 그래서 이슈가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이번 일도 그렇게 될까 봐 걱정된다. 부작용이 나올까도 우려된다. 영화가 잘 돼 좋기보다 그런 걱정이 더 크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작용을 우려하는가?
"너무 반응이 크다 보니 '좀 더 조심스럽게 다뤘어야 되는 것 아닌가' '약간의 과장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 아닌가' 그런 우려를 한다. 실제론 (인화학교 사건 가해자가)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는데, 소설과 영화는 빠른 전개를 위해 한 차례 심리로 처리했다. 집행유예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형량도 실제보다 내려서 표현했다. 죄인들이 치러야 할 죄값을 덜 받았다는 걸 쉽게 전달하려 각색을 한 것이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스폰서 검사, 전관예우, 사학비리, 공무원의 안이한 행정처리, 기독교의 비리 등은 우리가 뉴스 등에서 수 차례 접한 것들이다. 한 사건을 둘러싸고 이런 사안들이 응집되어 보여지니까 잠재된 불만들이 한꺼번에 폭발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등장하는 영화치곤 표현 수위가 높다는 비판도 있다.
"공지영 작가는 실제 사건이 너무 추잡해서 소설을 망칠까 봐 다 쓰지 못했다고 한다. 영화는 소설 속 가장 단순한 사건만 묘사하려 했다. 관객들이 영화 보다가 나갈까 봐 덜어낸 것이다.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를 전하고는 싶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조절했는데, 영화는 시청각 자극이 동시에 이뤄지니 표현 수위가 높다는 반응이 나오는 듯하다."
-재편집을 해 관람등급을 낮출 계획이라던데.
"영화 편집 당시엔 15세 이상 관람가를 기대했다.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고 교육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고교생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도가니' 보는 방법을 거론하고 있다더라. 그들이 볼 수 있도록 편집을 다시 할 생각이 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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