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펼치며 참여문학의 중심에 섰던 김규동 시인이 28일 오후 2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함북 종성 출신인 고인은 경성고보를 거쳐 1948년 평양종합대학을 다니다 월남한 뒤 그 해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발을 들였다. 50년대에는 박인환 김경린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모더니즘 운동에 참여하며 전후 피폐한 인간상과 야만적인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연합신문 한국일보 등 언론사와 출판사에도 근무한 그는 70년대 백낙청 고은 박태순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현실 비판적인 리얼리즘의 시 세계를 펼쳤고 분단의 비극과 통일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특히 북에 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편들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등단 후 60여년간 <나비와 광장> <죽음 속의 영웅> 등 9권의 시집과 <지폐와 피아노> 등 산문집을 냈으며, 최근에는 발표작 432편을 모은 <김규동 시전집> 과 자전에세이 <나는 시인이다> 를 냈다. 고인은 자전에세이에서 "혼돈과 무질서, 허위와 광기의 시대를 용케도 시라는 무기가 있어 그나마 오늘에 이르렀다"며 "소원이 있다면 세상 떠나기 전 꿈 속에서처럼 고향 땅에 한번 다녀오고 싶다"고 적었다. 나는> 김규동> 지폐와> 죽음> 나비와>
고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자주민주통일국민회의 공동대표 등을 지냈으며 은관문화훈장과 만해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강춘영씨와 윤(사무생산성센터 이사장) 현(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준(사무생산성센터 부사장)씨 3남.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0월 1일 오전 8시. (02)3410-6919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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