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과 소화제 같은 가정상비약(의약외품)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지만 국회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한국일보 28일자 6면 보도)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짜증을 다시 돋우고 있다. 국무회의 의결 직후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한결같이 부작용만 강조하며 법 개정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상임위 의원 개개인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도 공공연히 약사회 입장만 대변했다. 국회 통과는커녕 상임위 상정도 어려워 보인다.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는 논란의 과정을 거칠 만큼 거친 사안이다. 소비자의 편리성과 의약품의 안전성에 관한 논란은 '안전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편리성을 추구한다'는 쪽으로 이미 공감대가 확인돼 있다. 국민의 70% 이상이 지지하는 결론에 따른 대통령의 지시가 지난해 12월 있었고 총리실의 결정이 이어졌다. 하지만 약사회의 압력에 휘둘린 지역구 국회의원 출신 장관이 결정을 뒤집었다가 대통령의 질책을 받고서야 개정안이 마련돼 국무회의에 상정됐다.
국회 해당 상임위를 중심으로 의원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전국적으로 6만여 명에 이르는 약사들의 압력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들 상당수가 약사회와 직ㆍ간접적 관계를 맺고 있는 데다 약사회의 결속력이 강하고 여론전파력이 높아 내년 총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이 약을 멋대로 사먹고 중독에 빠지면 어쩌느냐"거나, "편의점이 부작용을 책임질 테냐" 등의 초보적 질의를 하면서 속 보이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정부가 어렵사리 약사법 개정안을 의결한 것은 논란이 시작된 지 18년 만이다. 오ㆍ남용과 부작용에 대한 정부 대책이 미흡하다고 여기면 국회에서 깊이 논의해 보완할 일이지 법 개정 자체를 무산시키려 들 게 아니다. 더구나 개정안의 대상은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을 거친 일부 의약품에 한정돼 있다. 정치권이 약사회의 눈치를 살피느라 전체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팽개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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