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이 보석(保釋)조건부 영장제도 추진의사를 밝히자 예상대로 논란이 일고 있다. 양 대법원장은 "불구속 수사는 원칙이자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구속영장 제도 개혁의 핵심사안으로 이 제도를 언급했다. 이는 현 형사소송법상 보석이 구속기소 후에 한해 가능한 것과 달리, 법원의 구속 심사단계에서 조건을 붙여 보석을 허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올 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에서도 제시됐으나 증거 인멸, 도주 가능성 등 수사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검찰의 반대로 흐지부지됐다.
양 대법원장의 언급대로 우리 형소법은 인신이 구속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현실은 이와 크게 동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사망사고, 뺑소니 등 교통사고 구속기준이 엄연히 활용되고 있고 재산범죄에서도 얼마 이상이면 구속이라는 등의 기준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예들이다. 구속 여부가 대개 죄질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므로 구속영장 발부는 그 자체로 유죄 판단에 따른 징벌적 성격을 갖는다. 크게 보아 유죄 확정 때까지는 무죄라는 형소법의 대원칙과도 배치되는 운용이다.
보석 조건부 영장제도는 이런 점에서 피의자 인신구속에 따른 자유권 제약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불구속 상태로 수사할 경우의 어려움은 검찰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억제한 상태에서의 기존 수사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검찰이 여전히 수사편의주의에 안주하려 든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더욱이 대법원장의 안은 자유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구속의 신병확보 효과까지 거둘 수 있도록 주거제한, 피의자 접견금지 등 수사 효율성을 위한 조건을 전제하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즉 돈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제도가 될 개연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도 피의자의 사정에 따른 보석금 책정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보완이 가능할 것이다. 보석 조건부 영장제도는 큰 방향이 옳은 만큼 충분히 추진해볼 만한 사안이다. 법조계, 학계에서 긍정적으로 논의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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