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어려울수록 몽상이 깊다. '2012년 대공황'이 예상보다도 일찍 밀어닥친 듯한 상황에서 '공황' 이후 자본주의의 질적 변화를 꿈꾼다.
시장의 위기감은 그제부터 누그러졌지만 어차피 장기 안정은 기대난이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확충과 유럽중앙은행(ECB)의 금융 완화, 그리스의 부채 감면 전망 등이 밝아졌지만 실행 규모는 아직 미지수다. 2008년 위기 때처럼 현재의 대응이 대증요법에 한정돼 위기의 본질인 금융ㆍ재정 체질 개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시장의 불안이 끊이기 어렵다.
대공황이 자본주의 체질 바꿔
그러나 급박한 위기 앞에서 대증요법을 능가하는 대응책은 찾기 힘들다.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해열제보다 급한 게 없다. 또한 충실한 대증요법으로 증상을 완화하다 보면 스스로 질병을 이겨내는 환자도 많다. 더욱이 시장심리 안정에 기여한다는 것만으로도 대증요법의 의미는 작지 않다.
무엇보다 현재의 세계경제ㆍ금융 위기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의에도 증세 진단과 장기 주문은 많지만, 대증요법을 빼면 당장 실현 가능한 구체적 처방은 눈에 띄지 않는다. 언젠가 들었던 "경제학은 경제학자의 무능을 드러내기 위한 학문"이라는 말이 새삼스러운 나날이다.
대증요법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일단 증상이 완화돼 질병을 이긴 환자는 '면역'이라는 본질적 변화를 덤으로 얻는다. 마찬가지로 경제위기에 대한 대증적 처방이 자본주의 체질의 근본 변화로 이어진 경우도 흔하다.
자본주의 최대의 위기였던 1929년의 세계 대공황이 좋은 예다. '검은 목요일'(10월 24일)의 뉴욕증시 주가 폭락과 함께 들이닥친 위기를 맞아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아무런 대응을 못했다. 아니, 당시로서는 그게 '올바른 대응'이었다. 당시의 주류 경제학은 대전제인 자유경쟁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넘어간 질적 변화를 무시한 채 자유방임 자세를 견지했다. 치유되기는커녕 날로 심각해지는 공황 속에서 그는 민주당에 정권을 넘겼고, 미국 사상 최악의 무능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았다.
후임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달랐다. '뉴딜(New Deal)'정책은 나중에 존 케인즈가 이론적 틀을 갖춘 '총수요 자극'을 염두에 두진 않았지만 그때까지 시장의 전유물이던 '가격 조절'에 국가가 개입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뉴딜 정책의 핵심인 농업조정법과 산업부흥법은 디플레를 막기 위한 인위적 가격유지 정책이었다. 목표했던 디플레 극복에는 실패했지만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총수요를 자극, 결과적으로 공황 극복에 기여했다. 실은 뉴딜 정책도 공황의 완전 극복에는 실패, 1937년 또 한 차례의 위기를 맞았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서야 대공황은 극복됐다.
대공황을 거치며 경제학은 '국가의 역할'을 자각했다. 재정투자의 총수요 자극을 강조한 케인즈 경제학이나 복지국가를 지향한 수정 자본주의가 모두 그 연장선상이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쇼크와 함께 찾아온 스태그플레이션에 이르러 케인즈 경제학은 벽에 부딪쳤다. 대규모 재정출동에도 경기는 회복되지 않은 반면 재정적자만 불어났다.
그 결과 '국가의 역할'을 규제 완화 등 일부 경쟁 촉진에만 한정시킨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새로운 조류가 됐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정보기술(IT)과 결합해 눈부시게 발전한 금융업으로 꽃을 피웠으나 2008년 위기를 거치며 대대적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재분배 방법 변화로는 부족해
그것이 케인즈 경제학으로의 복귀로 끝날 수 없음은 다가오는 이번 공황이 재정ㆍ금융 양면의 부실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케인즈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동시에 지양한 변증법적 대안이 요구된다. 흔히 거론되는 '따뜻한 자본주의'정도로는 부족하다. 단순한 부의 재분배 방법 변화가 아니라 '확대 재생산'이나 '무한 욕구' 등 기본 전제에 대한 혁명적 인식의 변화를 막연하게 기대해 본다. 그런 신세계의 주민이고 싶어서.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