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말부터가 무지 어렵다. 언론환경이니 뭐니 관심도 없는데, 못 알아들을 단어만 써댄다. 이건 뭐, 대략난감이다. 언론계에 몸 담은 기자들도 태반이 잘 모르는, 하지만 요즘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가장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는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얘기다. 우선, 여기서 렙은 대리인을 뜻하는 'representative'의 줄임말이다. 그러니까 수수료를 받고 방송사 대신 광고를 팔아주는 기구다. 그럼 출발! 종합편성(종편) 채널 출범과 맞물려 역학관계가 엄청 복잡하고 중요해진 미디어렙 문제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개그콘서트' 인기코너의 영향력을 빌려 좀 쉽게 얘기해보자.
#감수성
시청자 "짐(시청자가 왕이므로)이 걱정이다 걱정이야. 코바코(한국방송광고공사)가 위헌 판결(2008년 11월)을 받은 지 3년이 다 돼가는데 이걸 대체할 미디어렙법은 감감무소식이고, 무법천지가 됐으니. 언론사들의 동향은 어떠하오."
기자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종편 4총사(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가 10월 초 주요광고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갖고 본격 영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하옵니다. 이 와중에 MBC SBS도 각자 광고영업을 뛸 자사렙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언론 생태계가 약육강식의 정글로 치달을 우려가 매우 큽니다. 빠른 대책이 필요하옵니다."
#비상대책위원회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야, 안돼~. 생각을 해봐. 종편이 지상파처럼 의무재전송 대상에 포함돼 전국방송을 할 수 있지만 엄연히 지위는 케이블이야. 방송법에도 케이블의 개별 광고영업은 보장하도록 돼있어. 그런데 어떻게 렙에 들어가라고 해. 걔들이 '직접 광고영업을 포기하라' 이러면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순순히 말을 들을 애들이야? 그리고 내 신조는 자율영업을 보장해야 한다는 거야."
문방위 한나라당 의원들 "폭탄이 당장 터지게 생겼지만, 우리는 아직 당론도 못 정했지만, 어쨌든 다방면을 고려해 신중히 논의하고 있다고 힘주어 강조합니다(할리우드 액션)."
종편4총사, 그리고 눈치 보며 상황을 살피던 MBC SBS "흠흠, 알아서 잘 좀 합시다~."
한나라당 의원들 "그치? 이해관계가 좀 복잡하지? 그냥 모르는 척 어물쩍거리면서 법을 만들지 말아야 니들이 편하게 개별 영업하겠지? 그래,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깐."
#두분토론
언론노조 "처음부터 정부가 언론을 시장 논리로만 보고 경쟁력 있는 언론그룹을 육성하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야. 어디 정부가 나서서 언론 길들이기를 해? 뭐? 글로벌 언론? 덩치 크고 말 잘 듣는 언론만 싸고 돌면, 소는 누가 키워? 소는?(현재 코바코 체제는 지역방송이나 종교방송 등 취약매체를 연계해 판매해 다양한 언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정된 광고시장에서 매체가 늘어나면서 언론들의 진흙탕 싸움이 우려된다. 이대로는 언론이 자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독점체제의 문제도 있으나, 코바코는 그동안 방송사가 광고주에게 덜 휘둘리고 공영성을 지킬 수 있게 하는 완충 역할을 해왔다. 또 광고가 잘 안 붙는 프로그램도 공생할 수 있게 했다. 벌써부터 방송사들이 광고 따기에 혈안이 되면 질 낮은 오락 프로그램과 드라마만 판치고 시청률은 좀 낮지만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그램은 줄거나 아예 폐지될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물론 미디어렙법 입법화가 쉬운 일은 아니다.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 아니고서는 명쾌하게 정하기 힘든 MBC의 포지션(방송광고매출 1위 MBC를 공영렙 민영렙 중 어디에 넣을 것인가)이나 민영렙의 수 등 난제가 수두룩하다. 그래도 돈이 미디어판을 장악하는 '불편한 진실'을 막으려면, "할아버지 어렸을 때는 언론이 그래도 정권이나 기업 비리도 캐고 틀린 건 틀렸다고 지적하던 때가 있었어요" 하는 '그땐 그랬지'가 되지 않으려면, 미디어렙법 제정이 시급하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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