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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본의 먹거리 천국 니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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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본의 먹거리 천국 니가타

입력
2011.09.2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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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쌀·사케 그리고 연어… 마음은 벌써 雪國

복식 수확(베기와 탈곡을 동시에 함)이 보편화하고부터 알곡 밴 볏단을 가을볕에 세워 말리는 풍경이 사라졌다. 미질(米質)의 유불리를 떠나 농촌에 대한 정서의 한 단락도 뭉텅 생략돼 버렸다. 15호 태풍 로키가 일본 열도를 핥으며 비를 뿌린 지난 주, 니가타(新潟)에서 그 잘려나간 정서와 다시 만났다. 들엔 추수를 끝내고 2층, 3층으로 걸린 벼가 낟알을 문 채 바람을 버티고 있었다. 속도와 편리를 좇느라 잃어버린 농경의 마지막 매무새. 풍요롭게 출렁이는 벌이 끝나는 서쪽 바다, 우리의 동해로 구름에 싸인 낙조가 번져 내렸다.

니가타는 일본 최고의 쌀 고시히카리를 재배하는 고장이다. '고시(越)'는 이 쌀을 처음 재배한 지역 이름, '히카리(光)'는 빛을 뜻한다. 하지만 찰기(コシ)와 윤기(ヒカリ)의 합성어도 된다. 도정을 해 놓으면 거의 투명할 정도로 맑은 쌀인데, 밥을 지으면 탱글탱글한 감촉과 윤기에 눈과 혀가 모두 즐거워진다. 동행한 니가타현 관계자의 자랑 섞인 설명은 이랬다.

"언젠가 도쿄 긴자(銀座)의 최고급 요정 주인들을 상대로 설문을 한 적이 있었어요. '손님들에게 딱 한 가지만 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무얼 하고 싶냐'고. 가장 많은 대답은 '니가타현 우오누마(魚沼)산 고시히카리로 지은 하얀 쌀밥을 대접하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우오누마 쌀이 그토록 귀한 것은 꼭 값이 비싸서가 아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이 먹고 남은 쌀만 내다 파는데, 어릴 때부터 그 맛에 길들여진 탓에 돈을 아무리 준대도 좀체 팔 생각을 않는단다. 츠키오카(月岡) 온천에서 저녁식사로 가이세키(會席) 상을 받았다. 에도시대 영주 다이묘(大名)의 정찬인 진수성찬이다. 젓가락 대기가 미안한 화려한 상의 한가운데 있는 것은, 독특한 탄력으로 단맛을 감싼 하얀 쌀밥이었다.

좋은 쌀은 곧 좋은 술의 재료가 된다. 니가타에서 생산되는 사케(전통 청주)의 양은 일본 전체에서 3위. 하지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 대량 생산이 어려운 프리미엄급 긴조(吟釀)의 양은 최대다. 240만 인구의 현 내에 95개 양조장이 있고, 여기서 500여 가지 사케가 생산된다. 니가타시(市)에서는 매년 3월 중순이면 사케노진(酒の陣)이라는 사케 페스티벌이 열린다.

지난해 우승기업인 니가타현 무라카미(村上)시 다이요(大洋) 주조 공장장은 "니가타 지역 사케는 쌀알을 깎아내고 남는 부분인 정미보합률이 58.2%로 전국 평균보다 10% 가량 낮다"고 말했다. 쌀은 바깥부분에 잡맛을 내는 성분이 많이 섞여 있는데 이를 제거해 최고 품질의 사케를 생산한다는 설명이다. 깔끔한 맛을 내는 주조용 쌀 고시탄레이도 니가타에서 생산된다.

이곳 사케 맛을 결정짓는 보다 근본적인 환경은 니가타의 남쪽을 병풍처럼 두른 산악지역, 그리고 거기서 기인한 기후다. 니가타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나라였다'로 시작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의 소설 의 배경. 일본 최고의 강설량을 자랑하는 곳이기 때문에 겨울철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작아 고급 사케에 필수인 저온 숙성에 이상적인 조건이다.

다이요주조 공장장은 "눈이 녹으면 복류수가 돼 지면과 지하에 모이는데, 미네랄 성분이 적은 매끄러운 이 물이 니가타 사케 맛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늦가을부터 한겨울까지는 태평양으로 출분했던 연어가 회유하는 시기. 시월이 되면 니가타 북부 연안도시 무라카미시는 연어를 잡고 말리느라 분주해진다. 조카마치야(城下町屋)로 불리는 전통상가에서는 1m 가까이 되는 연어의 배를 가르고 소금을 친 다음 처마에 널어 말리는 전통 가공 방법을 직접 볼 수 있다. 멀리 홋카이도 해협을 지나 일본 열도의 서안을 따라 이곳까지 살아서 온 연어는, 긴 생존투쟁의 승자답게 강인한 아래턱을 갖고 있었다. 처마에 거꾸로 매달려서도 살벌한 눈빛을 쏘아냈다.

특이한 것은 내장을 꺼내느라 절개한 연어의 배 한 부분이 붙어 있는 점. 완전히 가른 배는 할복을 떠올리게 해 꺼리기 때문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막부 시절부터 이 지역에서 연어를 가공해왔음을 알게 해주는 단서다. 이 지역은 일본 최초로 연어알의 인공 부화에 성공한 곳이기도 하다. 조상 대대로 연어 가공업을 해온 기카와 뎃쇼 씨는 "연어만으로도 100가지 요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니가타=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본 알프스 별명… 트레킹 하고 온천으로 피로 싹~

히다(飛騨), 기소(木曽), 아카이시(赤石) 산맥을 묶어 일본 알프스라 부른다. 해발 2,000~3,000m의 고지대가 일본 열도 중앙부에 우뚝 솟아 있어 사계절 다른 얼굴의 천연림과 온천, 농촌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눈의 나라답게 제철은 역시 겨울. 하지만 다홍색 물든 산자락을 보며 트레킹을 하거나, 호젓하게 노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이 계절의 일본 알프스도 숨을 죽이고 다가서야 할 만큼 매력적이다.

● 비너스 라인은 다테시나부터 기리가미네, 우츠쿠시가하라 고원을 연결하는 산악도로다. 예부터 '신슈(信州ㆍ나가노현의 옛 지명) 최고의 경치'로 꼽힌 곳으로 지금은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높다. 미니버스에 몸을 싣고 이 길을 지난 날은 태풍의 영향으로 시계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평균 해발 1,400km의 굽잇길을 부드럽게 달리며 끝없이 스쳐 지나는 자작나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했다. 21개 스키 슬로프가 밀집한 시가 고원, 동계올림픽 코스로 이용된 하쿠바 등이 멀지 않다. 신슈-나가노 관광협회 홈페이지(www.nagano-tabi.net)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묘코(妙高) 고원은 나가노현과 니기타현의 경계에 있는 묘코산 동쪽 자락이다. 지고쿠다니, 아카쿠라, 이케노다이라 등 7개의 온천과 함께 9개의 스키장이 있다. 최대 4m 이상 눈이 쌓일 정도로 풍부한 강설량에 설질(雪質)도 뛰어나 유럽에서까지 스키 마니아들이 찾아온다. 묘코산 쌀로 술을 빚는 양조장이 3곳 있어 스키와 온천, 질 좋은 사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묘코시 관광협회(www.myoko.tv)나 니가타현 서울사무소(www.niigata.or.kr)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 에치고 유자와(越後湯沢) 온천은 소설 이 태어난 곳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묵었던 800년 역사의 타카한(高半)을 비롯한 10여곳의 료칸이 자그마한 동네에 모여 있다. 다카한 료칸은 의 집필 공간을 보존해 전시실로 꾸며 놓았다. 눈에 파묻힌 로맨틱한 휴가를 계획하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니가타현 관광협회(www.enjoyniigata.com)에 더 자세한 정보가 있다.

나가노·니가타=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여행수첩/ 일본 니가타

●니가타로 가는 대한항공 직항편이 매일 운항한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도쿄에서는 간에츠 고속도로를 통해 자동차(4시간 소요)로 이동하거나 죠에츠 신칸센(1시간 40분 소요)을 이용해 닿을 수 있다.

●니가타항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는 일본의 독특한 귀족 문화를 간직한 사도섬(佐渡ヶ島)이 있다. 중세 지역 유배지였다가 에도 시대 금광이 발견되면서 번영을 누린 곳이다. 본토와는 사뭇 다른 음식과 골드러시의 흔적을 접할 수 있다. 사도 관광 안내 사이트 www.visitsado.com

●나가노현은 일본 혼슈의 거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도쿄나 오사카 등에서 기차나 자동차로 그다지 멀지 않다. 3,000m급 일본 알프스 산들로 둘러싸여 키리가미네 고원, 토가쿠시 고원, 오오미네 고원 등의 경승지가 산재해 있다. 국보로 지정된 마츠모토성도 있다. 나가노현 관광협회 홈페이지 www.nagano-tabi.net

■ 니가타현 에치코츠마리 프로젝트

연간 강설량 4,000㎜, 65세 이상 노인 비율 30%, 시급으로 환산한 평균 노동 생산성 200엔.

니가타현 남쪽 산악지대에 위치한 도카마치(十日町)와 쓰난마치(津南町)를 묶어 부르는 에치코츠마리(越後妻有) 지역은 12월 초만 되면 눈에 묻혀 버리는 오지다. 위 숫자가 말해주듯 주민들은 너도밤나무숲 틈에 다다미를 포개 놓은 듯한 다랑이논을 파먹고 산다. 하지만 2000년 '대지의 예술제-에치코츠마리 트리엔날레'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부터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변신했다.

"인간이 자연에 포함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프로젝트의 목표는 그겁니다."

도카마치 농경문화촌인 농무대에서 만난 아트디렉터 미와 워랠씨는 이렇게 말했다. 니가타현은 15년 전 에치코츠마리 정비사업을 시작, 이 지역을 거대한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도쿄보다 넓은 760㎢의 땅에 흩어진 200여개 산간 마을이 현대미술 작가들의 창작 공간이 됐다. 도시의 속도와 절연된 집과 들, 산이 모두 작품이다.

구불구불 고갯길을 돌아 '그림책과 열매 미술관'에 도착했다. 2009년 마지막 학생들이 졸업한 폐교다. 아이들이 성장해 떠나는 과정 자체를 작품으로 구성한 것으로 학교 공간 전체를 커다란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교실 하나하나가 페이지다. 세 명의 마지막 재학생들이 힘을 합쳐 도깨비를 몰아내는 스토리가 관람객의 동선을 따라 이어진다.

에치코츠마리의 작품들은 버려지고 잊혀지는 풍경을 애써 감추지 않아 따스함과 상실감을 함께 느끼게 한다. 길 안내를 맡은 도카마치시 관계자는 "돈과 효율성이란 잣대로는 잴 수 없는 풍요가 가득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대지의 예술제'는 이 풍요로운 산골에서 3년마다 열리는 세계적인 미술 잔치다. 제5회 축제는 2012년 여름 개최된다.

니가타=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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