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진 "이젠 무대에 서면 하고 싶은게 많아서 떨려…"
오랫동안 남진(65)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가수였다. 그와 한 시대를 양분했던 나훈아가 '거장'으로 불릴 무렵, 남진은 디너쇼나 하는 흘러간 가수 정도로 기억됐다. 사람들은 그의 별칭이던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보다는 '조폭에 칼 맞은' 스타를 떠올렸다. 풍문으로 떠돌던 가수 윤복희와의 스캔들 때문에 '나쁜 남자'라는 편견마저 떠안았다. 1970년대 아이콘이었던 그는 그렇게 옛날 가수로 묻혀지는 듯 했다.
그런 그가 최근 '가수'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TV프로그램 '불후의 명곡'과 '나는 가수다' '승승장구' '나는 트로트 가수다' 등을 통해 그의 노래가 재발견되고 있다. 데뷔 45주년을 맞은 올해는 연초부터 기념 콘서트도 이어오고 있다. 마치 흘러간 전성기가 다시 돌아온 듯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그에게 옛날 그 사건들을 궁금해 한다. 인터뷰 전 모은 예상 질문 역시 '나훈아' '윤복희' '조폭' '팬 싸움' 등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서울 최근 서초동의 한 녹음실에서 만난 그는 예전 이야기보다 지금의 이야기를 할 때 더 신이 났다. 그는 "미칠 것처럼 노래가 좋고, 노래 없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려 40년 넘게 들어온 그의 노래가 요즘 가수들에게도 명곡으로 다가오는 것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커지는 그의 노래 사랑 덕분인 것 같았다.
-요즘에 TV에 자주 나오는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내가 테레비(TV)를 자주, 잘 안 하는 편이거든요. 추석 특집 '나는 트로트 가수다'도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이라 거부했어요. 근데 자꾸 출연해달라 설득을 하더군요."
-그 프로에서 부른 '비나리'가 화제가 됐죠.
"그렇지. 나는 그냥 좋아서 부른 것뿐인데. 처음엔 고사를 했는데 하여튼 요즘 대중가요가 조금 슬로우 다운해. 근데 선배 입장에서, 어떻게 보면 제일 제가 고참이잖아요. 이럴 때 이런 기회를 통해서 우리가 (대중가요를) 띄워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에 거절할 수 없더라고. 그래서 그냥 했어요."
-여자가수(심수봉) 노래인데 소화를 정말 잘하시더군요.
"난 여자 노래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 그런 이야기는 뭐, 그런 사랑 이야기는 누구나 남녀가 다 똑같잖아요. 그러니까 남자가 부르는 '비나리'죠. 내가 그 입장이 돼서 부르는 노래니까."
-요즘 노래들 가사 보면 안타까운 생각 많이 드실 거 같네요.
"깜짝깜짝 놀라지. 우리 때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가사예요. 제가 가요계 데뷔했을 때 '연애 0번지'라는 노래를 불렀어요.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임자 없는 내 가슴에 사랑을 심어 봐요. 달콤한 입술로 윙크하는 연애 0번지.' 근데 금지됐어요. 금지됐어. 막 스무 살 땐데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금지 당할 이유나, 어떻게 트집 잡을 말이 없잖아. 제목 '연애 0번지'가 야리꾸리하다는 거였어요."
-'0번지'가 문제가 됐나요.
"그게 번지를 딱 찍을 수 없으니까. 마음은 그냥 0이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심사위원들이 '야 이거 좀 이상하구만' 하면 그냥 금지였어. 저는 그런 걸 당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요즘 가사 보면 '야, 저거 금지 안 당하나? 금지 당할 거 같은데' 걱정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부럽죠. 우리 때는 그런 걸 부르고도 싶어도 못 불렀는데."
-첫 히트곡 '울려고 내가 왔나'도 가사 때문에 수난을 당했다는데….
"그건 아무 것이 아니었죠. 근데 그 판에 있는 노래가 '연애 0번지'였어요. 성재희씨라고 당시 최고 스타의 앨범에 제 곡 세 개가 들어갔어요. '연애 0번지' '토요일 밤 오후' '울려고 내가 왔나'. '연애 0번지'가 내가 제일 좋아한 곡이었는데 금지가 되어버려서 대신 세 곡 중 제일 싫어하는 '울려고 내가 왔나'를 부르게 된 거죠. 그게 트로트잖아요. 저는 원래 트로트 가수가 꿈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 노래가 대박이 나버린 거죠. 어릴 땐 배우가 되는 게 꿈이어서 좋아했던 음악이 전부 다 팝이에요."
-소위 '날라리'셨나 봐요.
"아니, 다르지. 단지 음악을 좋아한 거니까. 옛날엔 전축 가진 집도 많지 않았어. 난 계속 앉아서 음악만 들은 거예요. 판이 다 닳아서 팍팍 튈 정도로. 하루에 보통 최하 다섯 시간 이상은 들었을 거예요. 세월이 지나 우연한 기회에 가수의 길을 걷게 되니까 그게 어떻게 보면 공부가 된 거예요, 그게. 나의 큰 밑거름은 그거예요. 어제도 '열린 음악회' 녹화를 했는데, 재즈 형식으로 '고엽(Autumn leaves)'을 불렀어요. 지금 트로트 가수가 '고엽'으로 재즈하는 사람 있어요? 못 해. 그게 어릴 때 했던 음악 다 써먹는 거예요. 트로트를 하는 가수들은 트로트 컬러가 있잖아요. 나는 원체 팝만 불렀던 놈이 가요를 하니까 발성이, 벌써 표현 목소리 내는 방법이 다르지요."
-부유하게 자라서 힘든 정서를 표현하는 게 어려웠을 텐데요.
"그건 아무래도 감성이겠죠잉. 여유로우면 감성이 둔탁해지고 힘들고 어려워야 예민해지고 그런 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자기 그대로라는 거지. 유전적인 것도 있겠죠. 우리 부모님도 다 예민하신 분들이시라…."
-올해 나온 신곡 '너 말이야'는 마음에 드나요.
"아유, 그게 5년 걸린 노래예요. 가사가 마음에 안 들어가지고 한 스무 번 바꿨을 거예요. 양인자씨가 썼는데 그것이 세 번째 쓴 거예요. 다른 사람이 한 거 다 합치면 한 스무 번 정도 바뀌었어요. 멜로디는 너무 마음에 들고요. 편곡도 좋았고요."
-완벽주의자인 것 같아요.
"책임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마냥 자랑스럽고 관록 있고 그런 게 아니라, 뭐든 하나를 오래 하면 그걸 이겨내야 하잖아요. 신인 때 같으면 잘못해도 잘 모르고 한 거니까 얼마든지 넘어가지만 한 분야에서 40~ 50년 한 사람이 실수한다고 하면 보는 사람들이 용서하겠어요? '나이 먹더니만 약간 갔나' 이렇게 되지. 괜히 나가서 실수라도 하면 그렇게 된다니까. 무서워요. 두렵고. 그래서 TV 출연은 자주 안 해요."
-공연 때마다 거의 60곡 가까이 부르신다면서요.
"훈련 덕분이죠. 가수도 힘이 없으면 노래 못해요. 더구나 60~70곡 부르려면 에너지가 있어야지. 나이로 봐도 책임감 있는 노래를 해야 되니까 에너지가 많이 소비돼요. 수천 명이 딱 보고 있잖아요. '미워도 다시 한번' '빈 잔'을 푹 빠져서 부르다가 2,3초 후에 '님과 함께'로 넘어가잖아요. 훈련을 안하고는 절대 못하지. 그런데 이제 스태미너가 많이 딸려요. 그래서 하루에 한 두 시간씩 운동한 게 한 5~6년 됐어요. 아침에 무조건 걸어요. 한 시간 반 정도. 오후에도 따로 하고."
-노래 연습은 어떻게 하나요.
"내가 노래 속에 사는 게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 될 거예요. 눈 뜨면 복식호흡을 한 4~5분 정도 하고, 좀 서 있다가 내년에 녹음할 거 준비도 하고. 나도 모르게 눈뜨면 노래를 해요. 전국 공연 스케줄 때문에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반은 거기서 연습하는 거야. 10시간 탄다면 한 3시간. 6시간 탄다면 한 2시간 꼭 해요. 나는 가요뿐만 아니라 팝도 많이 하니까 외국노랠 많이 들어요. 요즘은 내가 활동하던 60~70년대하고 딴 세상이거든. 한류 세상이 왔잖아요. 맞춰서 또 해야죠. 따라 해야지. 나는 대중가수니까."
-노래를 부를 때 예전과는 감정이 다를 텐데요.
"'가슴 아프게'가 1966년, '마음이 고와야지'가 67년 노래인가? 그 노래를 50년 가까이 불렀으니까 얼마나 많이 했겠어요. 근데 지금 부르면 또 달라. '새까만 눈동자의 아가씨, 겉으론 거만할 것 같아도, 마음이 비단 같이 고와서, 정말로 나는 반했네.' 가사 하나하나가 이제는 막 뭐, 가슴 속에, 신경 속에 스며 있는 거예요. 가사 하나하나도 음미해서 불러주고 싶어요. '가슴 아프게' 처음 부를 때도 내가 뭘 아는 나이였겠어? 알다시피 고생도 안 해본 놈이고. 스물 한 살 땐가 불렀는데, 지금 '가슴 아프게'는 파란만장한 인생이 다 쌓여서 부르는 노래니까. 똑같은 멜로디에 가사여도 의미가 전혀 다른 노래죠."
-가수는 젊은 후배에게 밀리는 배우와는 좀 다르지 않나요.
"가수도 마찬가지야. 우리 나이 되면 설 자리가 별로 없지. 지금 내 또래가 (조)영남이밖에 없거든. 그 밑에 (조)용필이나 (나)훈아가 한 5년 차이로 있고. 그 몇 사람밖에 없어요."
-80년대엔 정치적인 이유로 노래를 못하게 돼 답답했겠습니다.
"그때는 고향 목포에 내려가 있었죠. 건물 짓고 거기서 그냥 사업 하나 하고 있었어요. 한 몇 년 쉬었어요. 한 1년 지나니까 다시 뭐 풀어주던데, 그냥 안 했어, 더러워서. 연락까지 오고 그랬는데. 그때는 노래도 마음이 안 생겨서 안 했어요. 이런 (노래에 대한)열정을 가진 것도 몇 년 안돼요."
-나훈아씨와의 라이벌 관계에선 영호남의 경쟁의식 같은 게 보였죠.
"그게 YS(김영삼)-DJ(김대중) 같이 하늘이 준 명콤비라는 거죠. 가요계에 아마 그런 절묘한 라이벌은 두 번 다시 없을 거예요.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시대가 운명적으로 만들어준 라이벌이잖아요. 당시 DJ와 YS도 동반자이자 기막힌 라이벌이었어요. 그 두 분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대통령 되신 거예요. 오늘의 남진과 나훈아가 있는 것도 그런 라이벌 관계 덕분이죠. 지금 무슨 송대관이나 태진아가 라이벌이라고 노는데, 자기들이 그 관계를 만든 거잖아. 그냥 귀엽지. 우린 다 팬들이, 정말 시대가 만들어준 거니까. 행운이지. 그게 없었으면 둘 다 여기까지는 못 왔죠."
-나훈아씨는 요즘 활동을 안 하니 한편으론 외로우시겠어요.
"그건 정말 그런 거 같아. 이 친구 뭐하나 궁금하기도 하고. 세월이 가니까 자꾸 옛날 생각들이 많이 나. 옛날 그 친구와 어렸을 때 재미 있었던 일도 생각나고. 솔직한 얘기로 지금까지 해온 건 40~50년이지만 남은 건 10년 미만이거든. 길어야 10년. 5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우리가 공연을 다녀보면 50대 아줌마들이 막 '오빠, 오빠' 해. 그럼 자기들도 10대로 돌아가는 거야. 나도 그 소리 듣고 20대로 돌아가는 거지. 서로 즐거운 거야. 훈아랑 그 시절을 함께 겪었는데. 그때 그 여학생들이 친구끼리도, 우리 때문에 서로 싸우고 난리였다고."
-얼마 전에 '무릎팍 도사'에서 윤복희씨가 "첫 번째 남편 보라고 남진과 결혼했다"고 말했는데요.
"방송 당시는 모르고 나중에 들었어요. 그런 얘기를 굳이 할 필요 없는데. 자기 일은 자기가 잘 알아서 하는 사람이니까. 잘 이해가 안 가."
-그래도 그 덕에 '나쁜 남자' 이미지가 '순정남'으로 좋아졌어요.
"그래요? 난 그런 건 모르지. 밖에 사람들 얘기 못 들으니까. 나쁠 것도 없고 좋을 것도 없는데. 사람들이 그냥 좋아서 만날 수도 있고 헤어질 수 있는 건데. 35년 전 얘기인데다 결과가 좋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굳이 왜 그런 얘기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남자로서 자랑스럽거나 좋은 일도 아닌데. 사람이 할 얘기가 있고 못 할 얘기가 있잖아. 지금까지 그냥 그렇게 묻혀 있었던, 두 세 사람밖에 모르는 일인데. 뭐… 난 깜짝 놀랐어. 이미 잊어버렸던 일이라. 그나저나 내가 왜 '나쁜 남자'가 됐나?"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루머가 따라다니잖아요. 예전부터는 윤복희씨 구타 소문도 있었고요.
"하이고~ 그분이 입술 요쪽에 원래 점이 있어요. 그 점을 누가 목욕탕에서 보고선 멍들었다고 그런 거예요. 그 말이 끝없이 퍼진 거죠. 그럴 수 있는 거지. 연예인이니까."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을 텐데요.
"미안하죠. 내가 요즘 와서 애들한테 신경 쓰고 잘해요. 우리 큰 놈이 작년에 시집갔지만, 오랫동안 가수 남진으로만 있었지, 아빠 남진으로서는 김남진(본명)이 되지 못한 게 항시 미안했지. 요즘은 아무리 바빠도 많이 신경 써. 하루에 전화를 몇 십 통씩 하니까."
-술 잘 하실 듯한데요.
"술, 담배 못해. 내가 술 먹었으면 큰일 날 놈이지. 아마 사고 수십 번 쳤을 거야.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짚고 넘어가는 스타일이니까. 그니까 대한민국 연예인 중에서 깡패들하고 싸워서 칼 맞아 본 놈이 나 말고 또 누구 있어요? (허벅지를 보여주며) 칼이 여기로 관통했어요."
-조직 폭력배까지 개입된, 나훈아씨 팬들과의 싸움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었죠.
"하이고~ 1,000% 거짓말이에요. 조폭하고 관계없어. 우리 세계는 여성 팬들이잖아요, 다. 이권개입이라면 모를까, 어느 여자들이 가서 그렇게 하겠어요."
-노래 인생 45주년을 맞았는데, 노래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때마다 느낌이 달라요. 처음에는 그냥 좋아서 했고, 나중에는 돈도 되고 인기도 좋았지… 지금은 노래 없이 내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노래가 나 같아요, 진짜. 나는 노래를 빼면 힘이 없는 존재야. 노래 없이 내가 뭘 어쩌겠어. 살 의욕이 없어요. 지금도 무대에 올라갈 때는 가만히 서서 안 부르고 온 몸을 흔들고 털고 막 그러잖아. 그게 열정이 없으면 안 털어지는 거지."
-음반 활동이나 콘서트 말고 새로운 시도를 할 계획은 없나요.
"내 시대라는 것은 대한민국이 다 알아주는 나훈아와의 라이벌 시대잖아. 두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가요사야. 이제 더 세월이 가기 전에 둘이 한번 한 무대에 서서, 그 팬들에게 같이 그 시절에 불렀던 노래를 해보고 싶어. 이 라이벌이 같은 무대에 섰던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한 번은 꼭 해야 되잖아. 그런 공연을 한 번 갖고 싶어요. 기회가 있다면 오직 우리 훈아씨하고 나하고."
-아직도 무대에 오르면 떨리시나요?
"너무 긴장이 돼요. 떨기도 많이 떠는데, 인자 무서워서 떠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떨어요. 옛날에는 생각도 못했던 거 이젠 다 알고 그걸 다 해보고 싶은 거야. 무대 나갈 때 자세부터 음악 간주 때 내 위치까지, 카메라 세 대가 어딜 비추는지, 내가 어느 각도가 좋고 나쁜 지도 알고. 음향도 그렇고. 하도 많이 파고 연구했으니 불편해. 이제 이걸 넘어 가야 돼. 그런데 자꾸 욕심만 더 생겨. 내 자신한테도 불만이 자꾸 많아지고. 알 때 되면 간다더만…."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채지은기자 cje@hk.co.kr
송준호기자 tristan@hk.co.kr
이인선기자 kelly@hk.co.kr
강기정 인턴기자(경희대 국문4)
■ 나훈아에 대한 애증
남진하면 나훈아, 나훈아하면 남진이 바로 떠오른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한 살. 서로 친구라 불러도 무방할 나이 차인데 남진은 인터뷰 내내 '후배'라는 표현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라이벌이라 해도 지나치다 할 만큼 엄격한 자세다.
남진이 "나훈아는 후배"라고 고집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훈아씨의 원래 나이는 51년생"이라서 자신보다 다섯 살 아래라는 것. 남진은 "내가 만나본 나훈아 친구들은 대부분 50~52년생이다"는 경험적 통계까지 제시했다.
남진은 "이런저런 차이를 떠나 일단 인간이 되는 게 중요한데, 원래 순수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중에 보니 아니라고 느껴지면 그땐 대화 자체가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훈아가 나이를 속여서까지 자신과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려 한 것이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남진은 나훈아에 대해 애증의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국 그런 점들이 그 친구를 외롭게 만든 이유가 아닐까 해요. 원래 자기 자리를 잘 다져야 일도 잘 되는 건데…."
그는 "전라도에서는 단 1년만 차이가 나도 깎듯이 선배 대접을 한다"고도 했다. "경상도는 형 동생 사이에도 '니야, 자야' 하지만, 전라도에서는 그러면 욕 먹어요." 그는 탤런트 백일섭, 임동진과의 관계를 예로 들기도 했다. "백일섭이가 나하고 동갑이에요. 그런데 학교는 나보다 1년 위거든. 내 1년 선배들하고 친구야. 그래서 만나면 '아, 형님 오랜만이요' 해요. 동진이 형하고 내하고 딱 한 살 차이야. 그래서 당연히 '형님~' 하고 인사한다니까." 나이를 기준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남진, 그런 남진에 대한 나훈아의 태도가 결국 두 사람의 갈등과 라이벌 의식을 부추긴 셈이다.
송준호기자 trist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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