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여행/ 울진 금강송 숲 송이 여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여행/ 울진 금강송 숲 송이 여행

입력
2011.09.28 11:29
0 0

"이기 이래 귀해질 줄 우째 알았겠어예? 호박캉 썰어 넣고 된장이나 끼리묵던 긴데…"

산림조합 공판장에서 1kg에 29만원이니 산에서 나는 것 치고는 아마 산삼 다음일 듯하다. 경북 울진군 근남면 굴구지마을 야산에서 만난 이복남(72) 할머니는, 그런데 이게 "어릴 때 하도 이기만 반찬으로 줘싸서 서러?뎬阪?음식이란다. 쭉쭉 뻗은 금강송 발치에 슬며시 머리 끝만 내밀고 있는 귀하신 몸, 송이버섯이다.

나락 거둘 날짜를 헤아릴 무렵이면 백두대간의 굽은 허리 부분에선 송이가 굵어진다. 맵싸함을 감춘 보드라운 향과 쫄깃한 탄력. 먹고 사는 걱정을 덜고 나서야 그 맛을 알게 된, 먹고 살 게 통 없던 시절 구황 나물처럼 뜯어먹던 버섯이다. 백화점 음식 코너에 금붙이처럼 모셔진 걸 사다 먹어도 안 될 건 없다. 하지만 산지로 가면 훨씬 싼 값에 싱싱한 송이를 맛볼 수 있다.

굴구지마을은 국내 최대 규모의 생태경관보전지역인 왕피천의 트레킹 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다. 대나무 피라미 낚시, 썰매타기, 감자떡 만들기 등을 사철 즐길 수 있는 농촌체험 마을이다. 푸진 마을 인심에 도시 생활에 옹이진 마음이 풀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9월 중순부터 한 달 가량은 마을을 감싼 야산 곳곳에 붉은 금줄이 쳐진다. 보초용 텐트도 곳곳에 세워져 있다.

등산화 끈을 동이고 산으로 들어갔다. 남중수 이장이 앞장을 섰다. 길 안내라기보다 '이 사람은 도둑이 아니오' 하는 에스코트에 가깝다. 자고 나면 길에 널어 말리는 깨, 고추, 마늘까지 차떼기로 싹 털리는 게 요즘의 농촌 사정이란다. 1년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송이철을 맞는 조바심이 오죽할까 싶다. 이 지역은 국유림이라 마을 주민들도 산림계를 짜서 소출을 나눠 갖는다.

"여기 있네예. 이게 송임더." 적잖이 헤맨 끝에 송이를 찾았다. 남 이장은 "지난 여름에 비가 잦아서인지 송이가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갓을 쪼갠 다음 세로로 몸통을 길게 찢었다. 갓 캔 송이의 향은 흙내와 솔잎 냄새에 묻혀 조금은 여린 듯했다.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홍운탁월(烘雲托月ㆍ달 주변을 물들여 달을 표현하는 기법), 이 맛을 표현하자면 이 맛이 아닌 맛을 지워내야 한다. 달고 시고 쓰고 짠 맛이 혀 위에서 모두 사라지면 느낄 수 있는 은은한 숲의 맛. 바로 송이의 맛이다.

"본대로 하자카믄(원칙대로 하자면) 칠십 넘으믄 산에 들어오믄 안 되는 기라. 근데 쟈(남 이장)도 글코, 요새 아들이 송이를 통 캘 줄 모른다 아이가. 그래 마 용돈도 할 겸 이래 안 들어오나."

전매자(73) 할머니는 송이를 캐려면 눈썰미와 머리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나무를 볼 줄 알아야 송이가 자라는 곳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어린 시절부터 송이를 캐다가 싸리 꼬챙이에 꿰 아버지 밥상에 올리던 솜씨를 이 마을 젊은이들은 아직 따를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놈이 그 놈 같은 소나무 사이에서 송이 밭을 찾아내는 품이, 여행자의 눈에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반나절 산을 헤매고서 먹은 건 송이 한 조각. 그래도 허룩한 느낌은 없다. 백두대간의 알싸한 향은 그렇게 근기가 있었다.

●10월 1~3일 사흘 동안 경북 울진군 근남면 울진엑스포공원에서 '2011 울진금강송축제'가 열린다. 송이 채취ㆍ요리 체험, 무료시식, 금강송 생태숲 탐방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송이 채취 체험은 축제 기간 하루 2차례(오전 10시, 오후 2시) 진행된다. 문의 울진군청 산림녹지과 (054)789-6828.

울진=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호텔가 다양한 송이 요리 선보여

송이철을 맞아 서울 시내 호텔들이 자연송이를 주제로 한 고급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02-3440-8000)의 일식당 만요는 옥돔으로 송이버섯을 말아 구운 송이버섯 시노비 구이를 주 메뉴로 한 가이세키(일본 정찬)를 내놓는다. 중식당 천산에서도 샥스핀, 해삼 등을 이용한 중국식 송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11월 30일까지.

● 롯데호텔 서울(02-771-1000) 일식당 모모야마는 10월 7일까지 자연송이 코스, 송이 소금구이, 송이 주전자 찜 등의 다양한 요리를 판매한다. 르네상스 서울(02-2222-8657) 일식당 이로도리에서는 3만원대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송이를 즐길 수있다. 중식당 가빈에서도 7만원대부터 송이 세트 요리를 제공한다.

● 밀레니엄 서울 힐튼(02-317-3240)은 송이를 이용한 프랑스 요리를 준비했다. 10월 한 달 동안 경기 양평 한우와 자연 송이를 재료로 만든 프랑스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다. 플라자호텔, 르네상스호텔,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등에서도 송이를 이용한 일식과 중식 음식을 10월 말까지 맛볼 수 있다.

유상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