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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켈틱 타이거'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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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켈틱 타이거'의 운명

입력
2011.09.2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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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경제 위기의 먹구름이 글로벌 시장을 다시 뒤덮은 지난 22일, 유럽의 서쪽 끝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는 흑맥주 축제가 한창이었다. 1759년 탄생한 기네스 맥주의 창립자인 아서 기네스를 기리는'아서스 데이'행사였다. 시민들은 기네스 맥주공장 등 시내 전역의 펍(Pubㆍ선술집)에서 17시59분(1759년을 상징)을 기해 일제히 건배를 했다.

그러나 이런 들뜬 분위기도 지난해 11월 시작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아래에 있는현실의 고통을 온전히 가리지는 못했다. 파티가 열린 맥주공장 입구에서는 남루한 차림의 한 가족이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애썼던) 아서가 건강보험도, 사회안전망도 없는 현실에 분노해 무덤에서 뛰쳐나올 것'이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했다.

변덕스럽고 칙칙한 더블린의 가을 날씨만큼이나 시민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경기 침체와 실업,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했다. 그래프텐 스트리트 등 시내 중심가엔 사무실 임대 안내문이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정류장마다 빈 택시들이 길게 줄을 섰다.

2007년 정점에 비해 반토막이 난 더블린의 집값은 여전히 내리막길이었고, 한때 3%대에 불과했던 실업률은 14%를 넘어섰다. 거리에서 만난 한 50대 가장은 "날씨도 추워지는데 가스ㆍ전기요금도 12~15% 오른다고 해서 걱정"이라며 "특히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과 엔지니어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이민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인구 450만명, 남한의 70% 크기의 면적을 가진 이 작은 나라, 2000년대 중반까지 '켈틱 타이거(Celtic Tigerㆍ켈트족 호랑이)'로 불리며 유럽 강소국의 모델로 여겨지던 아일랜드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개발도상국 못지 않은 초고속 성장을 안겨준 90년대 호황에 이어 2000년대 들어 부풀어 오른 부동산 버블에 취했기 때문이다. 사실 80년대까지만 해도 변변한 주력 산업이 없었던 아일랜드는 87년 전환점을 맞았다. 정부의 과감한 시장 개방과 규제 개혁 조치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 노사정이 사회협약을 통해 임금 인상 및 파업 자제를 결의했고, 법인세는 유럽 최저 수준(12.5%)까지 낮춰졌다. 정보기술(IT) 및 금융허브 전략을 채택, 미국의 ITㆍ제약 분야 글로벌 기업들과 자금을 대거 유치했다. 그 결과 1995~2000년 평균 9.7%, 이후 2007년까지 연평균 5%의 쾌속 성장을 이루었다.

문제는 부동산이었다. 외국의 직접투자 증가로 외국 근로자들이 몰려들면서 2001년부터 부동산 붐이 일었다. 유럽의 저금리도 이를 부추겼다. 금융기관들은 앞다퉈 EU 은행에서 싼 이자로 돈을 빌려 대출에 나섰다. 97년부터 10년간 집값이 거의 네 배나 뛰었다.

그러나 2008년 집값 버블이 꺼지자 모든 게 확 달라졌다. 외국 기업과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가계 부도와 은행 부실, 정부 재정 악화로 국가가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지난해 IMF로부터 675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올해 재정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10.2%로 예상되는 아일랜드는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향후 2년 내 정부 재정을 흑자로 돌려놓기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독일과 프랑스 중심의 EU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켈틱 타이거의 운명은 이미 그들의 손을 떠나 있는 셈이다. 작고 개방된 경제가 일순간 버블에 취했을 때 그 결과가 얼마나 혹독한 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3,000억 달러의 외화를 쌓아 놓고도 늘 글로벌 위기에 취약한, 개방된 한국경제로서도 남의 일이 아니다.

박진용 산업부 차장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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