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낮 서울 강동구 둔촌동 대로변의 5층 건물. 식료품점, PC방, 교회 등이 입주한 평범한 빌딩에서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2인1조로 짝을 이뤄 정확히 1분 간격으로 건물을 빠져 나왔다.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박모(43)씨는 "경찰이 거마대학생을 한창 단속하던 지난달 이 빌딩에 다단계 업체가 이주했다고 들었다"며 "원래 다단계 학생들은 정장 차림에 10여명씩 몰려다녀 쉽게 구분이 된다는데 이곳은 평범한 대학생처럼 옷을 입고 소규모 그룹으로 이동해 처음에는 다단계 학생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 건물에서 빠져 나오는 학생들을 붙잡고 사연을 캐물었다. 그러나 건물에서 나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옆 학생의 눈치를 보더니 "다단계 아니다"며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일부 학생은 "화장품 업체 교육장"이라고 해명했으나 간단히 몇 마디 나누는 것도 크게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취재 결과 이 빌딩 5층에는 두 달 전 A다단계 업체가 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과 마천동 일대에 자리한 불법 다단계 판매업체 영업 대학생을 뜻하는 '거마 대학생'이 경찰의 단속을 피해 인근 강동구, 경기 하남시 성남시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경찰은 거마지역에만 5,000여명에 이르던 다단계 학생들이 지난달 집중 단속 후 1,000여명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 단속으로 다단계 업체들이 근절된 게 아니라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가는 '풍선효과'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단계 업체뿐 아니라 학생들이 함께 거주하는 합숙소도 거마지역 외곽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마천동의 공인중개사 김모(51)씨는 "학생들은 20여명 정도가 50m²(15평) 내외의 반지하 주택에서 함께 생활했는데 최근엔 계약 기간이 남아 있음에도 방을 내놓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며 "이들이 단속을 피해 길동, 천호동, 하남 등 인근 재개발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도 "거마 지역에 다단계 업체가 새로 입주하는 경우는 없지만 대신 본사, 교육장, 합숙소 등이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A업체의 경우 둔촌동 5층 빌딩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건물 2, 4층에도 사무실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압수수색에 대비, 조직 쪼개기를 한 것으로 보였다.
다단계 학생들의 행동 또한 은밀해지고 있다. 길동의 한 주민은 "최근 경찰이 주변을 탐문한 적이 있는데 그 후 열흘 동안 다단계 학생들이 보이지 않다가 경찰들이 사라지자 다시 나타났다"고 전했다. 최근 다단계 업체에서 탈퇴한 박모(23)씨는 "서로 감시를 하고, 당일 접촉한 사람은 모두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외부인과의 접촉을 꺼린다"고 말하는 등 학생들에 대한 통제도 강화됐다. 다단계 업체는 선배가 후배와 2인1조로 움직이는 상호감시 체계를 구축해 조직 이탈이나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단계 학생과 가족, 지인 등에 대한 불법 물품 판매 피해는 여전하다.
경찰 관계자는 "자리를 옮긴 다단계 조직이 점조직처럼 세포분열하고 있어 어느 정도 규모로 이동하는지는 파악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정현기자 joh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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