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틀러' 가 결국 물러난다. 30년간의 공직생활 중 세 번째 퇴진. 환율 문제와 엮여 두 차례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물러났다가도 오뚝이처럼 일어섰지만, 이번엔 전혀 예상치 못한 정전 때문에 옷을 벗게 됐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27일 국무회의가 끝난 뒤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정전 사태 발생 이후 가진 기자회견(18일)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고 했던 그는 지난 26일 합동조사단의 사고원인 및 대책발표가 나오자 바로 이튿날 "에너지 정책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지난번 발표한 맥락에서 사퇴하겠다" 고 말했다.
사실 최 장관의 공직생활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가장 소신 강한 관료' 란 평가도 받았지만 특유의 직설적 발언과 업무추진 스타일 때문에 마찰이 끊이질 않았다.
최 장관은 관가에서 '환율주권론자' 로 통한다. 환율이 일정 수준을 벗어날 경우 직접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그의 소신에서 비롯된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환율 문제 때문에 그는 두 차례나 시련을 맛봐야 했다.
첫 번째 시련은 2003~2005년 옛 재경부 국제금융국장 시절에 찾아왔다. 2003년엔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환율 하락을 막아 낸 데 이어 2005년엔 역외선물환(NDF) 시장에 직접 개입해 환율을 방어했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 책임을 지고 정책라인에서 물러난 것. 최틀러라는 별명은 그 때 생겼다.
당시 최 장관은 우리나라 외환정책사상 처음으로 외국환평형기금을 동원해 뉴욕 NDF시장에 직접 개입했는데 그는 그때 상황에 대해 "(뉴욕으로 직접 쳐들어가) 시장을 교란시키는 투기세력과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었다" 고 말했다.
세계은행(IBRD) 이사로 발령 났던 그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옛 상사인 강만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의 부름을 받고, 기재부 1차관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불과 4개월 만에 또다시 환율 문제로 중도하차했다. 고환율 정책으로 물가 상승을 부채질했다는 여론의 직격탄을 맞았던 것. 그의 컴백을 도왔던 강만수 당시 장관을 대신한 이른바 '대리 경질' 이란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고환율정책에 대해 "우리나라처럼 작고 개방된 경제(small open economy)에선 대외균형보다 중요한 것 없다" 는 소신을 지금도 갖고 있다.
기재부 차관에서 물러난 그는 필리핀 대사를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다시 입성했다. 그리고 올 초엔 실물경제를 책임지는 지경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의 정책스타일은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정유사와 주유소를 상대로 기름값 인하를 압박하는 공격적인 업무 추진 방식을 고수했고, 초과이익공유제를 비롯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책을 놓고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대립하는 등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관가 일각에선 최 장관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질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여기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희생양이 됐다는 동정론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정치권과의 잦은 마찰에서도 보듯 강한 소신과 거침없는 언행이 사방에 적을 만든 결과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업무 스타일에 대해 "학연이나 지연 등을 따져가며 해야 할 말, 해야 할 일을 못한다면 공직에 있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 고 했다.
한편 청와대는 사의를 표명한 최중경 지경부 장관 후임자 인선에 착수했다. 후임 장관 내정자의 인선과 국회 인사청문 과정이 모두 끝날 때까지는 최 장관이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차기 장관 후보자로는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오영호 무역협회 부회장, 김동선 중소기업청장, 윤상직 지경부 1차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