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호(號) 사법부'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7일 공식 취임한 양승태 신임 대법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던진 화두(話頭)는 역시 재판에 대한, 그리고 법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 확보'였다.
양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재임 기간 동안 법관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결한 인격과 높은 경륜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인식이 국민의 뇌리에 깊이 자리잡게 하는 게 최대 목표"라고 밝혔다.
재판 결과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으려면, 법관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법관은 법률전문가이기 전에 훌륭한 인품과 지혜를 갖춘 인격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토대 위에서 재판 과정의 공정성도 확인돼야만 사법부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확보가 가능하다는 게 양 대법원장의 생각이다.
양 대법원장이 구상 중인 사법부 개혁의 청사진을 가늠할 수 있는 첫 번째 잣대는 무엇보다 오는 11월 퇴임을 앞둔 김지형 박시환 대법관의 후임 제청일 것으로 보인다. '대법관 구성 다양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양 대법원장은 "대법원은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의논하는 게 '법령의 해석ㆍ통일'이라는 본래 기능을 위해 바람직하며, 출신지역이나 학교, 성별 등의 다양성과 같은 외형적 모양새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임명된 대법관 7명이 모두 50대 남성, 서울대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이와는 다른 인사들로 대법원을 구성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양 대법원장은 "하급심의 잘잘못을 바로잡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우리 대법원의 현실상, 고도의 법적 경험과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대법관으로 필요하다는 한계는 인정해야 한다"며 고충을 내비쳤다.
사법제도의 개선에 대해서도 양 대법원장은 꽤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장심사 단계에서 영장발부와 함께 석방도 가능케 하는 '보석 조건부 구속영장제'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부분이다. 전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중요 사건에서 구속영장이 종종 기각되는 사례가 발생해 법원과 검찰이 갈등을 겪어 왔다. 피의자를 일단 구속해야 구체적인 진술 확보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검찰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데도, 공식 취임 첫날 이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양 대법원장이 작심하고 공론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연간 3만6,000건의 사건이 접수되는 대법원의 과도한 업무에 대해 양 대법원장은 "내 고집만 내세운다면 상고허가제 도입이 맞다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려는 국민들의 욕구를 외면해선 안 되는 만큼 구체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법관 증원에 대해선 "대법원 본래의 기능에서 더 멀어지는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현재 일부 형사 사건에서만 시행 중인 국민참여재판의 민사 사건 확대 적용에 대해선 "이제 참여재판 초기단계인데 민사 재판에까지 확대하는 것은 과욕"이라며 시기상조라는 뜻을 밝혔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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