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경기 하남시에서 주민소환제가 처음 시험대에 올랐다. 전국 최초로 실시된 시장 주민소환투표는 투표율 33.3%를 넘지 못해 개표까지 이르지 못했다. 투표는 무산됐지만 주민들이 서너 달 동안 찬반 양측으로 나뉘어 갈등을 겪은 만큼 후유증은 컸다. 투표에 사용된 시 예산 4억8,000여 만원도 허공으로 날아갔다.
경기도서 주민소환 광풍
경기도에서 다시 주민소환운동에 불이 붙었다. 보금자리주택에 반대하는 과천 시민들은 여인국 과천시장을 소환하기 위해 이달 8일 과천시선거관리위원회에 소환청구인 서명부를 제출했다. 서명부를 검증하고 있는 선관위가 유권자 15% 이상이 서명한 것을 확인하면 11월 중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시민단체인 남양주시의정감시단도 수석~호평 민자도로의 과도한 통행료 등을 문제 삼아 이달 21일 남양주선관위에 이석우 남양주 시장 주민소환투표 청구인대표자 증명서 교부를 청구했다. 의정감시단은 증명서가 교부되면 서명 운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추모공원사업을 백지화한 김만수 부천시장에 대한 소환운동도 본격화하고 있다. 가칭 주민소환추진위는 내달 초 발대식을 갖고 10ㆍ26재보궐선거가 끝나면 서명 운동에 돌입할 계획이다.
폭발하는 갈등
하남시에서 그랬듯 주민 간의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과천에서는 푸른과천NGO시민연대 등의 단체들이 "비리나 도덕성 문제가 아닌 정책 판단을 빌미로 주민소환이 이뤄지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을 훼손하는 것" 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양주에서도 주민소환이 시작되자 반대 측 단체들이 잇따라 의정감시단에 맞서고 있다. 남양주지역 장애인 관련 12개 단체는 27일 성명을 통해 "이런 식이라면 자치단체장 중 살아남을 사람이 없다"고 주장했다. 남양주시 이통장 협의회장들도 "특정 세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시는 청구인대표자 증명서가 교부되면 행정ㆍ사법적 대응까지 검토 중이다.
행정력 및 예산 낭비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과천에는 현재 타 선관위 직원 20명이 파견돼 서명부를 검증하고 있다. 인구가 과천(7만2,000명)의 몇 배나 되는 남양주(52만5,000명)나 부천(86만9,000명)에서의 서명부 검증에는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투표 비용은 해당 지자체가 부담하는 게 원칙이라 과천시는 이미 2억여원을 선관위에 지급했고, 투표까지 가게 되면 약 3억원을 더 내야 한다. 남양주의 경우 투표를 하면 15억원 이상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만약 유효 서명수를 채우지 못해 각하되거나 투표율이 낮아 개표를 못하면 세금만 축내게 된다.
더딘 법률 개정
2007년 5월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시행 뒤 주민소환투표가 청구된 곳은 하남시, 시흥시, 제주도뿐이다. 하남시와 제주도는 투표까지 갔지만 시흥에서는 서명인 수가 부족해 각하됐다. 청구는 못했어도 주민소환을 위해 벌어진 서명 운동은 전국 지자체에서 수십건에 이른다.
지방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주민소환이 남발되자 정치권에서는 그 동안 개정 법률안 12건을 발의한 상태다. 대다수는 청구 사유에 제한을 둬 정치적 악용과 불필요한 갈등을 막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직 행정안전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 관계자는 "올해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개정안이 논의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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