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세의 여고 동창생 재분(손봉숙)과 혜숙(이현순), 옥란(지자혜)이 오랜만에 만났다. '그땐 그랬지'식의 대화가 주가 되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급작스레 남편을 잃은 재분을 위로하기 위한 모임이건만 재분이 먼저 폭탄 선언을 한다. 남편은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고 이유는 자신이 바람을 피운 탓이라고. 이내 세 사람의 사랑과 성(性)에 대한 솔직한 대화로 이어지며 연극은 이 시대 황혼기 여성의 현실적인 미래상을 모색한다.
15일부터 서울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는 노년을 다루되 인생의 뒤안길로서가 아닌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에 눈을 뜨는 모습에 무게를 둔다. 지난해 한국 노년 남성의 삶을 다룬 '한 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을 무대에 올렸던 극단 산울림이 개관 26주년 기념작으로 선택한 여성 버전의 실버 연극이다.
농장 인부이자 전직 국어교사인 김한식(윤여성)을 만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새로운 사랑에 눈뜬 재분의 사연을 들으며 혜숙과 옥란은 자신들의 부부생활을 되돌아본다. 오래 전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혜숙은 성지순례와 봉사활동으로 무료한 세월을 보내고 있고, 옥란은 하루 온종일 파킨슨병에 걸린 남편을 돌보는 데 매달려있던 참이다.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은 노인을 사회의 짐으로 여기는 부정적인 시각을 거부하고 미래지향적인 시선으로 경쾌하게 바라보는 점이다. "우리가 뒷방 늙은이 노릇 하긴 아직 이르잖니?"라거나 "어쩌다 지하철을 타면 애들이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그런다. 그럴 땐 애들이 미워 죽겠어" 같은 대사가 노년기 관객의 공감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결론은 다소 뻔하지만 희망적이다. 재분은 고민 끝에 연하의 애인과 만남을 계속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재분을 부러워하던 혜숙은 "막연한 미래에 희망을 안고 살기보다는 현재를 생각하기로 했다"며 새로 만난 연인을 자랑한다.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다"고 믿는 옥란은 병든 남편 곁을 지키는 것에서 남은 삶의 의미를 찾기로 한다.
이들 세 사람에게서, 극장을 가득 메운 노년층 관객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어떤 해답을 구했을까.
칠순이 넘은 원로 작가(윤대성)와 연출가(임영웅)는 남성의 시선이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황혼기 여성의 일상을 한 올 한 올 섬세하고 솜씨 좋게 엮어냈다. 10월 9일까지. (02)334-5915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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