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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취업 스펙경쟁, 기업이 막아라

입력
2011.09.2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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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시즌이다. 기업마다 신입사원 공채가 한창이다. 하지만 채용 시장이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채용 규모는 올해 하반기에 이어 내년에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구직자들의 고통과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50여일 동안 견습기자 선발 전형에 관여하면서 취업 전쟁을 실감했다. 특히 지원자가 써낸 자기소개서에는 구직을 위해 흘린 땀, 심사위원의 눈길을 끌어야 하는 절박함이 오롯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자기소개서를 모두 읽은 뒤에는 안타까움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지원자들은 저마다 잘 관리된 '스펙'을 뽐냈다. 하지만 지원자의 소신이 묻어나는 개성 있는 스펙은 보기 힘들었다. 스펙은 대체로 해외 교환학생, 어학연수, 워킹 홀리데이, 해외 배낭여행ㆍ봉사활동, 아르바이트, 기업 인턴십 참가 등에 집중됐다. 치열한 스펙 경쟁에 눈치 보기가 심해져 '스펙 동조화'현상이 빚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스펙 찾아 해외 가는 구직자들

또 최근 입사한 후배 기자나 지원자, 그리고 언론사 입사를 준비 중인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스펙에는 트렌드가 있었다. 과거에는 어학연수가 대세였지만 최근에는 해외 오지 봉사활동이 뜨는 식이다. 실제 입사 지원자 중에는 아르바이트로 비용을 벌어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다녀온 이도 있었다. 그러고도 취업에 실패하면 큰 상처가 되지 않을까 마음이 아팠다.

스펙 쌓기의 진화는 취업 경쟁 격화에 따른 구직자의 불안 심리가 원인이 된 것 같다. 남과 다른, 남보다 특별한 무엇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강박이 구직자들을 스펙 경쟁으로 내몬 것이다. 정확한 취업 정보의 부족도 이유일 것이다.'해외 봉사활동이 취업에 도움이 된 것 같다'는 식의, 상관관계를 검증할 수 없는 인터넷의 불확실한 정보는 구직자들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스펙 쌓기는 구직자의 능력과 경험을 배양하고 시야를 넓힌다는 점에서 구직활동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껏이다. 복사만 하는 인턴사원 생활을 몇 차례나 하고, 등록금 내기도 힘든 판에 어렵게 번 '알바'수입으로 마음에도 없는 스펙용 해외 봉사활동 떠나고, 휴학을 반복하며 구직과 상관없는 공모전과 자격증 취득에 도전하고, 그런 뒤에도 초조감에 또 다른 스펙을 찾아나서는 것이 구직자들의 현실이다.

이쯤 되면 스펙 쌓기는 사회병리현상이다. 서둘러 치료해야 한다. 치료의 주체는 누가 돼야 할까. 구직자? 천만의 말씀이다. 구직자들을 불요불급한 스펙 경쟁에서 자유롭게 해야 하는 것은 기업이다. 기업에겐 그렇게 해야 할 이유와 책임이 있다. 왜 구직자들이 봉사활동에 집착하게 됐을까 생각해 보라. 2000년대 들어 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하고 채용 과정에서 봉사활동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왜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했을까. 봉사가 좋아서? 아니다. 비자금을 조성해 차떼기로 불법 정치자금을 나르고, 편법으로 오너 일가의 부의 세습을 기도하고, 분식회계로 투자자들을 속이다 들통나는 바람에 여론이 악화하자 이를 무마하려고 들고 나온 것이 사회공헌활동이다. 기업들은 오너들이 밥 푸고 연탄 나르고 집 짓기 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열을 올렸다. 구직자들이 봉사활동 스펙 하나 없으면 입사지원서를 쓸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된 구조가 정착된 것이 이때부터다.

부작용과 출혈 간과하면 안돼

경제단체가 중심이 돼 대학생들의 70% 정도가 충족할 수 있는 스펙 최저기준을 정하면 된다. 채용 심사 항목은 얼마든지 있으니 그 이상의 스펙은 아예 지원서에 적지 않게 하거나 써도 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된다. 기업은 스펙 경쟁 때문에 구직자들이 흘리는 출혈을 더는 외면해선 안 된다.

채용 인원을 몇 명 늘렸다고 알량한 자랑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등록금, 생활비에 허덕이는 그들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주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불요불급한 스펙 쌓기 경쟁 추방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황상진 편집국 부국장 겸 디지털뉴스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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