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국철(49) SLS그룹 회장의 신재민(53)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 대한 금품제공 의혹과 관련, "현재로서는 더 수사할 계획이 없고 의미도 없다"고 밝혔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정권 실세와 연관된 각종 의혹을 연일 쏟아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시각 차가 매우 커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26일 "이 회장을 조사했는데도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한다면 뻔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23일 이 회장의 기자회견 하루 만에 그를 참고인 자격으로 전격 소환해 조사함으로써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기류가 크게 바뀌었다.
이 관계자는 "이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하면서도 수사협조는 안 하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이 회장을 다시 부를 계획이 없으며 신 전 차관 소환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특별한 변화가 없으면 수사를 계속하기 어렵다는 뜻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검찰이 이처럼 일찍 선을 긋고 나선 것은 수사 실무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신 전 차관의 금품수수 의혹을 밝히려면 공여자 진술이 전제가 돼야 하는데 처음부터 어긋났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9년 동안 10억여원을 신 전 차관에게 제공했다고 밝히면서도 일관되게 대가성은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뇌물수수나 알선수뢰 혐의로 신 전 차관을 수사하려면 이 회장이 대가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기본 전제"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23일 검찰 조사에서도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돈을 준 것이지 특별한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니라고 진술했다.
이 회장이 증거자료 제출을 미루고 있는 것도 검찰로서는 부담이다. 이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신 전 차관이 사용했던 SLS그룹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검찰에 제출하겠다고 말했지만 아직까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혐의가 특정돼도 이 회장이 대가관계를 부인해 공소유지가 어려운 상황에서, 돈을 줬다는 주장만 갖고 수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 따라 이 회장이 구체적 물증을 제출할 때까지 정권 실세 로비 의혹 수사는 일단 중단하고, SLS그룹 워크아웃 과정에서의 금융비리 의혹을 먼저 살펴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검찰이 이 회장의 자택이나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 수단을 동원하지 않은 채 진술에만 의존하는 것은 수사의지가 약하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또 신 전 차관이 2007년 이명박 후보 캠프인 안국포럼에서 활동할 때 받았다는 현금과 법인카드는 금품수수 사실만 확인되면 대가성 여부와 상관없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가 가능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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