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두 달이 지났지만 시험기간에 함께 공부하던 동기들, 수업 때 장난치던 선배들 모두 눈 앞에 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건물이 언제 무너지지 않을까 불안에 떨며 지내지만 친구들을 떠올리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원인 조사가 꼭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인하대 신소재공학부 1학년 박미리(19)씨는 지난 여름 발생한 춘천산사태 생존자 중 한 명이다. 사고로 갈비뼈와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한 달 넘게 병원신세를 지다 지난 달 퇴원한 그는 먼저 간 친구들과 함께 한 기억을 떠올리며 조용히 흐느꼈다.
지난 7월 27일 오후부터 내린 기록적인 폭우는 강원 춘천시 신북읍 마적산 한 귀퉁이를 쓸어 내렸다. 갑작스런 산사태로 산 아래 민박 3개 동이 완파됐고 그 곳에 투숙했던 인하대 발명동아리 아이디어뱅크 소속 학생 10명을 비롯해 모두 13명이 숨졌다. 도서 산간지역 아이들에게 과학원리를 알려주겠다며 방학 때마다 봉사에 나섰던 학생들은 그날을 끝으로 가족, 친구들과 영원한 이별을 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학생들에겐 떠나간 친구들의 빈자리가 크기만 하다. 사고 후 매일 같이 유족들을 돕고 있다는 동아리 부회장 한새미(20)씨는 "가슴 한 켠이 텅 빈 것 같지만 동아리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며 "당시 부상자 25명 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퇴원해 학교를 다니거나 휴학 후 치료 중"이라고 전했다.
유족들은 사고 직후 원인규명을 위해 춘천시와 조사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 이들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춘천시가 예산부족을 이유로 조사에 필요한 용역비용 지원에 난색을 표하더니 결국 지난 9일 조사위원회가 해체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고(故) 김재연 학생의 아버지 김성규(55)씨는 사고 이후 매일 컴퓨터 동영상을 보며 눈물 흘리는 아내를 돌보느라 마음이 먹먹하기만 하다. 그는 "먼저간 아이들을 위해 남은 우리가 할 일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는 것"이라고 울먹였다. 유가족들은 사고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슬픔을 나누고 춘천시의 사고 조사를 촉구하는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유족들은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고원인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대책위는 "사고가 난 마적산은 1990년과 99년 두 차례 산사태가 났던 곳으로, 춘천시가 정상부근 방공호와 군사도로를 그대로 두고 건축허가를 무분별하게 내줘 물을 머금은 산이 무너졌다"며 "관할 당국인 시는 억울한 죽음이 왜 일어났는지 규명하기보다는 정부가 지급한 특별재난지원금으로 현장을 정리할 생각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 11일에는 다음 아고라에서 춘천시의 조사를 촉구하는 청원을 받기 시작해 5일만에 3,000여명이 서명했다. 정치권에도 도움을 요청, 30일 예정된 국정조사에 이광준 춘천시장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유가족 대표 김현수(55)씨는 "매년 되풀이되는 사고를 천재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원인 규명을 통해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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