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오디션 프로그램 홍수 속에 상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10억원을 훌쩍 넘었다. 새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길 때마다 1,2억원은 우습게 뛰는 상금 규모를 보면, 요즘 전 지구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는 세계적 경제위기가 딴 세상 얘기처럼 들린다. 지난해만 해도 오디션 상금은 국내 오디션 열풍의 진원지인 엠넷 '슈퍼스타K 2'의 2억원이 최고였다.
올해 후발주자로 뛰어든 MBC '위대한 탄생'이 차별화를 위해 상금을 3억원으로 올리자, '슈퍼스타K 3'도 질세라 5억원을 내걸었다.
지상파와 케이블 강자 CJ E&M의 양자 대결 구도였던 오디션 프로그램 및 상금 경쟁은 ETN이 지난 7월 10억원('글로벌 슈퍼 아이돌')의 '통 큰' 승부수를 던지며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ETN은 음반제작 및 연예기획사 예당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케이블 오락채널. 여기에 새로 개국하는 종합편성(종편) 채널 jTBC가 26일 무려 100만달러(약 12억원, '메이드 인 유')를 들고 가세했다. 상금 경쟁이 실시간 경매 사이트에서나 보던 '무조건 지르고 보자'는 식의 과열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금 경쟁의 가장 큰 원인은 홍보 효과. 지상파와 케이블 할 것 없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일단 '최고 상금'으로 시청자들 눈길을 잡고, 실력있는 지원자를 유인하는 효과를 얻겠다는 것이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 PD는 "비슷한 포맷의 오디션 프로그램 중 눈길을 끌려면 상금을 높이는 게 가장 효과적인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물론 이 상금이 고스란히 우승자에게 전달되는 건 아니다. SBS 'K팝스타'심사위원인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상금을 이슈화시키는데, 상금에 음반제작비 등 갖가지가 붙어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jTBC는 상금 100만달러에 음반제작비 등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기존 방송과 차별화하고 훌륭한 인재를 끌어 모으기 위해 상금액수를 크게 잡았다"고 내놓고 홍보했다. 방송 다양성을 내세워 종편에 진출한 일부 언론사들이 참신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는커녕 오디션 열풍에 편승해 돈 경쟁만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한 방송관계자는 "해외에 수출하기도 힘든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상금을 그렇게 높여서 수지가 맞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방송사들이 더 많은 광고를 끌어들이기 위해 시청률 경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최근 몇몇 프로그램에서 논란이 됐듯이, 눈길을 잡고 화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출연자들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노출하고 상황을 왜곡ㆍ과장해 편집하는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 더 극성을 부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형 기획사들이 앞다퉈 뛰어드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당초 TV 오디션은 몇몇 기획사들이 장악한 연예계 진출 통로를 넓혀 다양한 개성을 지닌 스타를 발굴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과당 경쟁에 휩쓸리고 대형 기획사들이 손을 뻗으면서 본래 취지가 점차 빛을 잃고 있다. 앞으로는 외모보다는 실력과 개성으로 부각된 '슈퍼스타K 2'의 허각이나 장재인 같은 스타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폴 포츠, 수전 보일 등을 배출한 영국 BBC의 '브리티시 갓 탤런트'(상금 10만 파운드ㆍ약 1억8,000만원) 등 외국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스타 탄생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미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의 경우 상금은 아예 없지만 일정액을 받고 세계적 음반사 소니뮤직과 전속계약을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지원자들의 호응이 뜨겁다. 이를 통해 켈리 클락슨, 캐서린 맥피, 제니퍼 허드슨 등은 세계적 스타가 됐고 프로그램의 명성도 같이 높아지는 윈윈 효과를 얻었다.
전문가들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시청률 경쟁에만 몰두해서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한다. 참신한 재목을 발굴해 진짜 스타로 키워주는 시스템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오디션으로 발굴만 하고 내팽개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스타가 나오기 힘들다"며 "슈퍼스타가 안 나오면 방송 역시 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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