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배움의공동체연구회' 교사들 학습 현장/ "잘 가르치는 수업이 아닌 잘 배우게 하는 수업으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배움의공동체연구회' 교사들 학습 현장/ "잘 가르치는 수업이 아닌 잘 배우게 하는 수업으로"

입력
2011.09.26 17:32
0 0

"아무리 일어나라고 잔소리를 해도 엎드려 자는 애들이 태반이에요. 아이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서울 A고 B교사)

"학습 결손이 쌓인 애들은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외면하고 학원에서 미리 배워 온 애들은 다 아는 얘기라 시시하다고 무시하니 도무지 어디에 수준을 맞춰야 할지 난감해요." (서울 신천중 역사과 유광희 교사)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교육커뮤니티 회사 내 강의실. 20대 병아리 교사부터 20년 넘게 교단을 지켜온 베테랑 교사까지 30여명의 초중고 교사들이 모여 저마다 학생 수업 지도의 어려움을 쏟아냈다. 한바탕 하소연을 끝낸 교사들은 저녁 끼니도 거른 채 더 나은 수업 방식을 찾고자 머리를 맞댔다.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이때 모임을 주도한 배움의공동체연구회 손우정 대표가 툭 한마디 던진다. "선생님들, 잘 가르치려는 수업 고민은 그만하시고 어떻게 하면 잘 배우게 할 수 있을까를 연구해 보세요. 수업 잘하는 교사 밑에서 배우는 아이들이 모두 공부를 잘하지는 않잖아요."

손 대표가 이날 '잘 배우게 하는 수업'의 해법으로 제시한 개념은 바로 협동수업이다. 교사의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이 아닌 학생끼리 조별로 토론하는 방식으로, 사토마나부 도쿄대 교육학과 교수가 처음 고안해 우리나라에는 2001년 손 대표가 전파했다. 현재 전국 100여개 학교, 1,000여명의 선생님이 협동수업을 실험하고 있다.

협동수업의 특징으로는 크게 3가지가 꼽힌다. 우선 교실의 자리배치. 일렬로 세워진 아이들의 책상을 4개씩 붙여놓는다. 귀찮다고 책상을 걷어차며 반항하는 아이가 있다는 한 교사의 반박이 나왔다. 손 대표는 "너로 인해 다른 친구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단호하게 알려주라"고 조언했다.

두 번째는 창의적으로 수업을 디자인 하는 것. 손 대표는 '목표-달성-평가'로 이뤄지는 계단형 교육은 다량의 지식을 축적하는데 용이할 뿐 창조성을 키우는데 함량미달이라고 지적했다. 대신 그는 '주제-탐구-표현'을 중시하는 등산형 교육을 통해 다양한 배움을 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선 아이들의 참여를 높이는 게 핵심이다. 조별 토론과 발표는 기본이고 역할극, 실험 등 다양한 형식을 시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협동수업은 동료교사에게 수업을 보여주고 공유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교사 역량 평가를 중심으로 하는 여느 공개수업과 달리 협동수업에서는 배움의 실상을 살피는 데 중점을 둔다.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는 없는지, 아이들이 어떤 지점에서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등이 평가 대상이다.

이날도 경기 부천 부인중 김현경 교사의 2학년 역사 수업 영상을 참관하고 토론하는 이른바 '임상 수업' 이 진행됐다. 김 교사는 '고려시대 귀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주제를 던졌고 4명씩 조를 이룬 학생들은 질문도, 답도 교사의 도움 없이 자기들끼리 찾아 연대기를 작성해 나갔다. 수업 내내 김 교사는 각 분단을 돌며 남은 시간을 알려주거나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을 독려할 뿐 수업을 주도하는 것은 재잘대며 토론하는 학생들이었다.

1시간 남짓한 영상 속 수업이 끝나자 교사들의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 앞 부분에 아이들이 한마디씩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10분이 넘게 걸리더라고요. 쓸데없는 얘기가 많이 나와서 저거 다 들어주다가는 제 시간에 못 마치겠다 싶었는데, 끝나고 보니 질문시간이 이 수업을 이끌어간 원동력이었던 것 같네요."(서울 신당초 우지영 교사) "사실 저도 진도를 빨리 빼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뭘 궁금해 하는지 신경 안 쓰고 가르치기 바빴었는데,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준 점이 놀라워요."(경기 광명 소하중 도덕과 손용미 교사)

손 대표는 "강의식 수업은 잘 하는 학생들은 계속 잘하게 하고 학습 결손이 생긴 아이들은 방치하는 구조"라며 "협동수업은 구성원 전체의 학습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파주 해솔중 지리과 임정순 교사는 "강의식으로 수업할 땐 내가 진짜 잘 가르치고 있나 위로 받고 싶은 마음에 잘 하는 아이들 눈만 쳐다보며 수업을 했던 것 같다"며 "협동수업을 통해 그 동안 내 시야에서 방치됐던 아이들도 좀 더 세밀하게 살피고 싶다"며 의지를 다졌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