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사태가 정확히 4개월 전으로 되돌아갔다.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은 귀국 후 첫 연설을 했지만, 즉각 퇴진을 기대했던 국민의 요구를 외면했다. ‘살레 복귀→권력 재장악→반정부 시위 및 내전 확산’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살레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국영TV 연설에서 “우리는 아브드 라부 만수르 하디 부통령이 서명한 걸프협력협의회(GCC)의 중재안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GCC 중재안 수용 의사는 그가 부상 치료차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기 전에도 줄곧 되풀이했던 레퍼토리다. 중재안은 살레 대통령이 직접 서명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퇴진 등 자신의 거취와 관련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대신 그는 중재안 서명의 전제 조건으로 대통령 선거와 총선, 지방선거를 포함한 모든 선거를 조기에 치르자고 제안했다. 중재안은 살레 퇴진 후 대선 실시를 명시했는데, 이 절차를 뒤바꿔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중재안을 무효화하고 합법적으로 권좌를 유지하겠다는 속셈이다.
살레의 자신감은 4개월의 공백에도 그를 보좌하는 친위 세력이 굳건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군과 충성파는 살레의 귀국에 발맞춰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진압 수위를 한층 끌어 올리고 있다. AFP통신은 지난 일주일 동안 수도 사나에서만 유혈 진압으로 173명이 숨졌을 것으로 추산했다.
국제사회는 GCC 중재안을 통한 해결을 고수할 뿐,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해 사태 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유엔과 미국 등은 예멘 전역에서 유혈 충돌이 격화하자 살레 측에 폭력을 중단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이행하라고 촉구했으나 권력이양 협상과 관련한 대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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