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위기의 해법으로 주목 받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증액 문제가 또 다른 논란으로 떠올랐다. 3년 전 금융위기 때 미국이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TARP)으로 경기를 부양한 것처럼 EFSF를 증액해 유로존의 재정위기를 해소해야 한다는 게 미국 등 주요 금융 당국의 요구였다. 28, 29일 예정된 핀란드와 독일 의회의 EFSF 확충 승인 여부에 관심이 쏠린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26일 EFSF 증액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 EFSF 증액을 놓고 유럽 당국은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S&P의 데이비드 비어스 국가 신용평가 부문 대표는 이날 “EFSF 확충 방안이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EFSF 한도 확대가 독일,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로존 회원국이 출자와 보증으로 조달한 자금을 구제금융에 사용할 경우 국가재정의 건전도가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S&P가 EFSF 증액에 급제동을 걸면서 핀란드와 독일 의회의 표결 전망도 극히 불투명해졌다. 4,400억유로인 EFSF를 최소 2조유로로 증액하는 이 방안이 좌절될 경우 EFSF 확충→민간은행 구제→그리스의 부분적 디폴트(채무구조조정)라는 3각 그랜드 플랜은 시작부터 헝클어지게 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EFSF 증액이 가결될 것을 자신한다”며 의회 설득에 강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독일마저 신용등급이 강등된다면 유로존은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
S&P는 신용등급 영향을 줄일 방안으로 유럽중앙은행(ECB) 보증을 통한 자본 확보를 제시했지만, ECB는 “공짜 점심을 먹으려는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S&P는 20일 유로권 3위국 이탈리아의 등급을 내렸고, 7월에는 그리스 국채등급을 정크본드로 조정한 바 있다.
S&P는 세계 경제의 더블딥(경기 이중침체) 문제도 신용등급의 변수라고 지적했다. 비어스 대표는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의 등급은 위기관리 능력에 달려 있다”며 “특히 독일도 결국 주변국의 영향을 받는다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고 독일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였다.
유럽위기의 향배를 결정할 또 하나의 변수는 유럽연합(EU)과 ECU,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번 주 실시하는 그리스에 대한 실사이다. 그 결과에 따라 10월초까지 1차 구제금융 6차분(80억유로) 집행이 결정되며, 집행 보류 시 그리스는 디폴트에 빠지게 된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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