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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초상화, 침묵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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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초상화, 침묵을 깨다

입력
2011.09.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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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상화는 왜 근엄한 얼굴에 반듯한 자세를 하고 있을까. 감상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받을 만한 인물을 그려 제사를 모시는 데 썼다. 나라에서는 역대 왕의 어진을 그려 별도의 전각에 봉안했고, 나라에서 그려준 공신 초상화는 해당 가문이 사당에 모셨다.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 충이나 효, 열로 칭송 받는 이들이 초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터럭 한 올이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一毫不似 便是他人)’라고 믿었기 때문에 조선의 초상화는 매우 사실적이다. 극적인 표현이나 과장이 없어 담담하면서도 인물의 품성이 느껴진다. 그렇게 그려진 초상화를 실제 사람 대하듯 해 몸가짐을 삼가며 본받기에 힘썼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7일 개막하는 기획전시회 ‘초상화의 비밀’은 조선시대 초상화 명작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다른 나라의 것과 비교해볼 수 있도록 일본과 중국 초상화 각 8점, 17세기 서양 화가 루벤스와 프란스 할스의 작품 각 1점을 포함해 총 200여 점을 걸었다. 국내 초상화 전시로는 가장 큰 규모다.

문동수 학예연구사는 “조선의 초상화는 대륙적 스케일의 중국 초상화보다 겸손하고, 선묘 위주에 섬세한 분위기의 일본 초상화보다 절제된 기품을 지녔다”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 초상화의 특징과 변천사를 살피는 데 좋다. ‘태조 어진’ ‘윤두서 자화상’ ‘이재 초상’처럼 유명한 작품뿐 아니라 평소 보기 힘들었던 이명기, 김홍도, 박동보, 김희겸, 조중묵, 이한철, 채용신 등 당대 최고 화가들의 국보급 초상화도 많이 나왔다. 후기로 갈수록 얼굴 표현에 음영을 살려 입체감이 강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 이후로 개인에 대한 자각이 커지면서 주문 제작으로 그려진 작품들은 초상화 주인공의 내면과 취향을 드러낸다. 구한말 사진술의 등장이 전통 초상화에 미친 영향과 고희동, 이쾌대 등 근현대 초기 작가들의 작품도 볼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서 빌려온 루벤스 작 ‘한국인 초상’은 A4 사이즈보다 조금 큰 스케치다. 철릭 비슷한 옷을 입은 이 남자는 그동안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 이탈리아로 건너간 ‘안토니오 코레아’로 알려졌지만, 에도 시대 일본에 와 있다가 네덜란드 관리에게 발탁된 조선의 전직 관리라는 설도 있다.

초상화에 따라서는 바탕에 다른 그림이 감춰져 있다. 최치원 초상화는 적외선 촬영 결과 주인공 좌우에 시중 드는 동자가 숨어 있었다. 목과 어깨, 옷이 안 보이고 얼굴과 수염만 허공에 뜬 모습이 초현실적이기조차 한 윤두서의 걸작 자화상은 적외선으로 찍어보니까 목을 감싼 옷깃과 어깨선이 나타났다. 세월이 오래 흐르면서 지워진 것이다. 이번 전시는 X-선과 적외선 촬영을 통해 초상화 속에 숨은 또 다른 그림을 보여주는 코너와 함께, 초본부터 완성본까지 초상화의 제작 과정도 소개한다. 전시는 11월 6일까지. (02)2077-9000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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