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의 중심지 미 뉴욕의 월가가 금융위기 후 새로운 시위 문화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침체를 초래한 금융당국의 무능과 월가의 탐욕을 성토하는 것에서부터 마약, 환경, 사형제 등 사회 현안에 대한 주장까지 시위대가 분출하는 의견은 다양하다. 연일 계속되다시피 하는 월가의 시위는 경기침체가 직접적인 단초가 됐으나 지금은 마치 40여년전 베트남전 반전시위를 촉발한 히피들의 집회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현지시간) 월가 인근 주코티 공원에서 수백 명의 젊은이들은 "탐욕의 월가를 점령하자"며 노숙 시위를 벌였다. 17일 배낭과 침낭을 들고 밤샘 시위를 시작한 지 벌써 9일째다. 이들은 전날 뉴욕 경찰이 도로를 점거하고 차량과 보행자의 통행을 막았다는 이유로 85명을 체포한 것에 항의, 브로드웨이 거리를 행진했다. 시위대는 음식과 돈, 생필품을 서로 나눠주며 "우리의 저항은 자유의 광장에서 공짜 피자와 함께 계속된다"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시위 참여를 촉구했다.
폭력을 지양하고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행동강령'에 시위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이의를 달지 않았다.
시위는 이집트 민주화의 상징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처럼 월가를 금융 민주화의 상징으로 만들자는 문화운동단체 애드버스트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하는 금융에 국한되지 않았다.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라'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등 경제 현안에 대한 주장이 많았지만 이 말의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는 시위자도 많았다. 미시간주에서 온 안나 슬루카는 "나는 간섭을 원하는 게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일부는 최근 사형이 집행된 흑인 사형수 트로이 데이비스에 대한 당국의 결정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었고, 마약과의 전쟁이나 환경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메인주에서 온 베키 워텔은 시위 참가 이유를 묻자 "장관을 연출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외신들은 이번 시위를 "1969년 시카고에서 열린 '분노의 날' 집회와 비슷하다"고 전했다.
다양한 목소리만큼 시위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주니 티카라는 여성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며 반나체 시위를 벌였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조끼를 입고 말 없이 드럼을 두드리거나, 즉석 공연을 하고, 난데 없이 미국 국가를 부르기도 한다.
동일한 목표도 없는 이들이 왜 함께 모여 '월가 점령'에 나섰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이들을 시위에 나서게 했다"고 분석한다. 생활비가 없어 학업을 포기하거나, 학자금 대출로 감당할 수 없을 빚을 떠안았음에도 직장조차 얻지 못하는 암담한 현실이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여전히 오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는가'하는 심정"이라고 전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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