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부터 부산은 영화의 바다다. 14일까지 70개국 307편의 영화가 스크린에 투영된다. 고르는 재미는 있지만 막막하기도 하다. 손쉽게, 세계적 대가들의 화제작을 보려 하면 표 구하기가 별 따기 같다. 영화제의 매력 중 하나는 보통 때엔 극장에서 만날 수 없는 영화들과의 조우다. 더군다나 칸국제영화제 대상인 '트리 오브 라이프'(감독 테렌스 말릭) 등 유명 감독의 최신작들은 대부분 국내 개봉 예정이다. 조금의 모험심을 갖고 색다른 즐거움을 찾으려는 관객들을 위해 부산영화제의 숨은 보석들을 소개한다.
미지의 영화들에 주목하라
아르헨티나 영화 '야타스토'는 10대 세 소년의 삶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현재를 바라본다. 대도시 코르도바 외곽에 살며 폐병과 고철 등을 수집해 살아가는 소년들의 고단한 일상에 초점을 맞췄다. 에르메스 파랄루엘 감독의 데뷔작.
이탈리아 영화 '테라페르마'(감독 에마누엘레 크리알레세)는 "불법이민자 문제를 다룬 수작"(이수원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이다. 아버지를 바다에 잃은 뒤 어머니와 함께 민박집을 운영하는 20대 청년이 리비아 출신 불법 이민자 모자를 숨겨주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100년 가족'은 일본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이 정체성과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재일동포 사회의 현주소를 전한다. 2000년 남북정상 회담 이후부터 10년 동안 카메라에 기록한 내용을 편집했다. 재일동포 김덕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안과 목소리들'(감독 미카엘 바티니안)은 생소하기만 한 아르메니아 영화다. 한 여인이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을 통해 역사적 인식을 깨닫게 되는 모습을 다뤘다. 대만에서 일하는 여성 이주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전하는 대만 다큐멘터리 '돈과 사랑'(감독 리칭휘)도 주목할 만하다. 고국의 가족들을 떠나 병든 노인들을 돌보는 여성들의 가슴 아린 삶이 펼쳐진다. "여성 문제를 고루 다루면서도 재미의 끈도 놓지 않는다"(홍효숙 프로그래머)는 평이 따른다.
'신을 본 남자'(감독 우메쉬 비나약 쿨카르니)는 코미디와 드라마를 깔끔하게 혼합한 인도 영화. 몇 년간 가뭄에 시달리던 작은 마을에 신을 봤다는 사내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묘사했다. "인도 영화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신예 감독의 작품"(조영정 프로그래머)이다.
이색 중국 무협영화 '왜구의 무기'(감독 수하오펑)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듯. 일본 무기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왜구로 낙인 찍힌 두 검객이 전설적인 무인과 싸워야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시아 웨스턴, 들어 보셨나요
특별 기획 프로그램 '아시아 웨스턴, 동부의 사나이들'은 역대 부산영화제에서 가장 특이한 기획전으로 꼽힐 만하다. 필리핀 일본 한국(이상 각 2편) 태국 홍콩 우즈베키스탄 인도 등 아시아 국가에서 만들어진 웨스턴(서부극)을 모아 상영한다. 할리우드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웨스턴의 다양한 변주를 접할 수 있는 드문 기회. 옛 동구권에서 제작된 웨스턴도 덤으로 만날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거장 임권택 감독의 '황야의 독수리'(1969)다. 일본군에게 가족을 잃고 복수를 꿈꾸는 한 남자와, 일본군에 의해 인간병기로 길러진 남자의 아들이 대결하게 되는 기구한 운명을 그렸다. 함께 상영되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형님 격에 해당하는 '만주 웨스턴'.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지금 봐도 아주 파격적인 소재를 아주 과감하게 다룬 영화"라고 평가했다.
옛 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들어진 '일곱 번째 총탄'(1972)과 옛 동독 영화인 '전사 위대한 뱀'(1967)은 공산주의 시각이 반영된 이른바 '레드 웨스턴'. '일곱 번째 총탄'은 중앙아시아 초원을 배경으로 공산 혁명과 웨스턴의 접목을 시도한 작품. '전사 위대한 뱀'은 서부 개척 시대의 백인 우월주의가 깃든 정통 웨스턴과 달리 인디언 영웅의 활약상을 그렸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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