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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이주일의 小史] <23> 서정시인 김영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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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이주일의 小史] <23> 서정시인 김영랑

입력
2011.09.2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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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 단풍 들것네."장광에 골붉은 감닢 날러오아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오매, 단풍 들것네."

......

백두에서 붉은 옷을 차려 입은 가을의 자태가 설악을 따라 남하하기 시작했다. 전남 강진의 사랑채 장독대에 떨어진 빠알간 감 잎 하나. 이를 본 누이가 어느새 가을이 왔음에 화들짝 놀라자 27세의 시인은 이 모습을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로 표현했다.

'북에는 소월이요 남에는 영랑'이라 하여 '진달래꽃'을 쓴 김소월 시인과 더불어 우리 시문학사에 쌍벽을 이루는 서정시인 김영랑이 1950년 9월 29일 타계했다.

1903년 윤식이라는 본명으로 강진의 부유한 지주 집에서 태어난 영랑은 17년 휘문중고교의 전신인 휘문의숙에 입학해 정지용, 박종화, 홍사용 등의 영향을 받아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3학년이던 19년 3ㆍ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 내려가 만세운동을 하다 6개월 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이후 서울을 오가며 작가 최승일과 교류하던 중 그의 누이동생인 무용가 최승희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30년에 이르러 광주 송정리의 벗 박용철이 주도한 시 전문지 <시문학> 이 창간되자 영랑은 이 책에 '동백 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등 13편의 시를 한 번에 발표하며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했다.

그의 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상성과 경직된 목적 의식을 주로 다뤘던 경향시에서 우리 말의 아름다움과 서정시의 본령을 보여줌으로써 시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35년 첫 번째 작품집인 <영랑시집> 을 통해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했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한 그의 초기 시는 같은 시문학 동인인 정지용의 감각적 기교와 함께 당시 한국 순수 시의 극치를 보였다.

40년을 전후한 일제 강점기 말에는 '거문고', '독을 차고', '묘비명' 등을 통해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를 드러냈으며 8ㆍ15 광복 후에는 민족 운동에 참가하는 등 자신의 시 세계와는 달리 행동파적 일면을 보이기도 했다.

48년 서울에 올라와 공보처 출판국장을 잠깐 지낸 영랑은 50년 9ㆍ28 서울 수복 당시 유탄에 맞아 사망했다. 주요 저서로 <영랑시집> 과 <영랑시선> 을 남겼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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