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없는 러시아를 지지한다."
2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푸슈킨 광장에 시민 350여명이 모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내년 대선에 출마키로 한 것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정권 퇴진과 정상적인 선거제도의 도입을 촉구하며 시위했다. 이날 집회가 대대적인 반대 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미하일 드미트리예프 모스크바 전력연구센터장은 "모스크바 인구의 40%, 기타 도시 인구의 20~30%를 차지하는 중산층이 국가 정치를 좌우하는 시한 폭탄"이라며 "이들이 만족할 정권 교체 없이는 더 급진적이고 광범위한 반대 세력과 마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의 대선 출마 선언 과정도 불신을 부채질했다. 집권 당시 부패와 비리, 정실인사를 남발했던 푸틴이 메드베데프에게 맡긴 대통령직을 넘겨받다시피 하면서 과거 독재의 유령을 되살렸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와 관련해 "지금의 러시아가 국가보안위원회(KGB) 아래서 숨도 못 쉬던 과거의 러시아가 아니며 국민은 민주화를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푸틴이 언론홍보전문가 등 정치꾼을 동원해 밀실 흥정을 민주 절차로 둔갑시켰지만 선택지 없는 정치 시스템에 국민 인내심이 바닥났다고 전했다. 세르게이 마르코프 통합러시아당 의원은 "메드베데프의 인기가 떨어졌기 때문에 푸틴이 돌아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 소련 공산당 서기장도 경계심을 나타냈다. 그는 푸틴이 대권을 잡고 개혁을 중단할 경우 "러시아 경제가 정체돼 사회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다시 시작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전문가 제임스 골드게이어는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당선은 거의 확정적이다. 여당에 마땅한 후보자가 없고 반대편인 자유민주당의 지지도 약하기 때문이다. 입지가 흔들리는 쪽은 푸틴이 아니라 그와 역할을 바꾸기로 한 메드베데프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 재직시 시도한 개혁정책의 실패로 푸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렉세이 쿠드린 재무장관 겸 부총리는 "메드베데프 총리 체제에서 일할 생각이 없다"고 선언했다. 이를 두고 로이터통신은 "푸틴의 최측근이면서 총리직에 야심이 있는 쿠드린이 정치 담합에 싫증난 국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쿠드린은 2008년 글로벌 위기 때 국가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르노캐피탈 헤지펀드 수석전략가 롤란드 내쉬는 "쿠드린은 메드베데프만큼 푸틴과 가깝다"며 "어쩌면 총리 입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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