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놀이터에 말이 있었다
모래 속에는 몸통만 남은 말이 다섯 마리 있었다
희고 검고 파랗고 노랗고 붉은 말이 있었다
머리를 관통한 쇠막대기가 함께 있었다
내륙 산간에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로부터 온 신의 메시지는 모래 위에 새겨지지 않았다
* * *
‘노는 것도 일이다.’ 어릴 적엔 어른들의 그런 말씀을 들으면 이상했어요. 공장의 모터소리처럼 요란한 놀이공원에 가보면 그 말씀이 맞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휴일의 놀이공원이 아니라 놀이공원의 휴일이 좋아요. 폐관 시간의 놀이공원에 가보고 싶어요. 한밤중 얌전히 멈춰서 쉬고 있는 회전목마, 돌아가지 않는 빨간 대회전차, 쉬고 있는 놀이기구들 사이를 달빛과 함께 걸어 다니고 싶습니다.
그러면 안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할 것 같아요. 멀리 달아나지 못하고 다리도 없이 뱅글뱅글 돌며 제자리에서 들썩이기만 하는 우리들, 목마들. 휴일이 지나면 꼼짝없이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관통한 쇠막대기와 같습니다. 놀이기구의 모습이 꼭 우리의 초상처럼 느껴집니다. 요즘 놀이공원은 야간에도 개장을 한다니, 이런 상념은 한밤중 집 앞 놀이터에서나 가능한 것. 그네 위에 혼자 앉아 밤새 흔들리면서요. 우리가 달아나고 싶었던 내륙 산간에는 지금 폭설이 쏟아지고 있답니다.
시인 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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