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밤 서울 홍대앞 재즈클럽 에반스. 공연 시작 1시간 전 홀은 이미 꽉 찼다. 청춘 남녀부터 중년 부부까지 관객은 다양했다. 잠시 후 클럽 매니저라는 청년이 등장해 클럽 탄생 10주년을 알리자 환호와 함께 축하의 박수가 홀을 울렸다.
'둥둥둥둥, 두둥둥둥~' 첫 무대에 오른 '더 버드'가 묵직한 베이스 선율로 공연을 열었다. 이어 합세한 키보드의 흡입력 있는 리듬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서서히 사로잡았다. 어느 순간 색소폰이 치고 나와 역동적인 소리를 뿜어내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댄스 클럽과 인디 록밴드가 양분한 홍대 앞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재즈클럽 에반스의 저력은 역사를 압축한 숫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001년 문을 연 후 연인원 1만2,000여명의 연주자들이 클럽 문턱을 드나들며 3,500여차례 공연을 펼쳤다. 그동안 팬들도 꾸준히 늘어 홈페이지(www.clubevans.com) 회원수만 2만7,000명을 넘어섰다.
에반스는 스탠다드 재즈뿐 아니라 재즈와 비슷한 라틴음악, 탱고, 월드뮤직 등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실험을 해오고 있다. 국내 재즈클럽의 대명사인 서초동 '야누스'가 정통 재즈의 본거지였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 20일 시작해 30일까지 이어가고 있는 10주년 기념공연에도 '김수열, 최선배 퀸텟'이나 '서영도 일렉트릭 밴드' 등 재즈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쿠마 파크'나 '크리스탈 레인' 같은 젊은 그룹들이 포진해 있다. 젊은 재즈 밴드들의 주무대 역할을 해온 에반스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구성이다.
'더 버드' 역시 그런 에반스의 수혜를 입은 밴드다. 5인조 퓨전재즈 밴드인 '더 버드'는 에반스가 문을 열 때부터 무대에 올라 어느 팀보다 인연이 깊다. 리더인 김정렬씨(베이스)는 "그동안 에반스가 '맨땅에 헤딩하듯' 힘겹게 운영해온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10주년을 맞았다는 것이 더 대단하고,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홍세존(48) 대표는 '재즈를 편안하게 즐기자'를 모토로 꿋꿋이 에반스를 지켜왔다. 중견 재즈 베이시스트이기도 한 그는 일본 유학 중 동네 재즈클럽을 돌아다니면서 클럽 운영의 꿈을 키웠고, 한국에 돌아와 전세금을 빼서 에반스를 열었다. 당시 주로 클럽을 찾았던 재즈동호회 팬들은 이제 40대가 됐다.
"10년 동안 변한 게 있다면 초창기엔 동호인들이 재즈 지식을 과시하려고 클럽에 왔다면, 지금은 개인별로 즐기려고 온다는 거죠." 그는 지금이 더 좋다고 한다. "재즈는 지식의 음악이 아니거든요. 저마다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홍 대표는 아직도 국내 연주자들을 외국 유명 연주자들과 비교하는 풍토가 아쉽다고 했다. "한국 재즈도 마니아층도 늘어나고 연주자도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자꾸 비교만 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더 공부하고 연구해서 한국적인 재즈를 정착하는 게 급선무이죠."
27,28일에는 이번 기념공연의 하이라이트인 '남자 피아노 열전'이 열린다. 이영경, 비안, 원영조, 송준서, 민경인, 고희안, 최현우, 윤석철 8명의 연주자들이 총출동한다. 홍 대표는 "국내 베테랑 남성 재즈 피아니스트들의 다양하고 수준 높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했다.
송준호기자 trist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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