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국가인권위 조사관이라고 밝힌 사람이 기자에게 전화해 대뜸 꺼낸 첫 마디다. 양천서 경찰관 3명이 지난해 1월 야간건조물침입절도 혐의로 체포한 임모(27)씨에게 '날개꺾기' 등 고문을 가했고, 임씨가 이를 인권위에 진정하자 인권위가 '경찰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키로 했다는 보도(한국일보 9월22일자)의 취재원을 알려 달라는 취지의 질문이 이어졌다.
조사관은 "인권위 문건을 보고 쓴 것 아니냐. (한국일보보다 하루 늦게 보도한) 모 언론사 기자도 '한국일보가 인권위 문건을 갖고 있다'고 했다"는 엉뚱한 얘기도 늘어놨다. 먼저 보도했다는 이유로 한국일보를 걸고 넘어진 타사 기자의 행동도 어이 없었지만, 그 기자의 주장만 듣고 다짜고짜 전화해 출처를 따져 묻는 인권위 조사관의 행동은 더 기가 막혔다. 조사관은 취재원 보호가 언론의 자유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몰랐던 걸까.
더군다나 인권위는 이번에 알려진 가혹행위 진정 건을 지난해 7월 접수해 놓고도 담당자 교체 등을 이유로 뭉기적거리다가 1년이 넘은 지난달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누구의 눈치를 보는 건지 결정 내용에 따른 고발, 기관에 대한 권고 등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미적대고 있다.
인권위의 임무는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경찰의 가혹행위 결정을 내렸다면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장치를 마련하는 게 인권위의 소임이다. 인권위가 취재원 캐기에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본연의 임무에 더 충실하기를 권고한다.
정승임 사회부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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