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에 청와대가 침묵하고 있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이명박 대통령은 25일 별다른 일정 없이 청와대 본관에 머물며 하루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굳은 표정의 이 대통령이 격노했다거나 누구를 질책했다는 얘기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청와대도 공식적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측근 비리는 물론 글로벌 재정 위기 심화에 따른 환율, 주가, 물가 등의 심상치 않은 국내경제 동향도 이 대통령의 입을 무겁게 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공식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전날 서울공항에서도 이 대통령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항에는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김효재 정무수석, 정진영 민정수석, 장다사로 기획관리실장이 나와 이 대통령을 마중했다. 정 수석과 장 실장이 나온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측근 비리와 관련된 문제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돌았다. 보통 대통령이 귀국할 때에는 청와대 참모 중에 대통령실장과 정무수석이 공항에 나와 영접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국내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을 드렸지만 아무 말씀이 없었고 간간이 고개만 끄덕이셨다"며 "해외에 계실 때에도 이미 관련 보고를 했기 때문에 특별한 보고도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침묵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스타일"이라며 "그만큼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김두우 전 홍보수석의 부산저축은행 로비 의혹이 제기됐을 때만해도 '큰 일이야 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검찰에서 구체적인 혐의 사실이 흘러나오고, 여기에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금품수수 의혹이 터져 나오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평소 '내 임기 내 측근 비리는 없다'며 자신했었는데 누구보다 신뢰했던 사람들의 비리 의혹에 적지 않게 실망했을 것"이라며 "고심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 사안이 앞으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불안해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측근 비리가 터져 나오는데 그게 과연 무엇인지, 이게 시작인지 아니면 끝인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라며 "이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더욱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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