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짠 회화'라 불리는 태피스트리(tapestry)는 중동과 유럽에서 주로 성서나 역사적 내용을 담아 실내 장식용으로 사용됐다. 빽빽한 직조 덕에 소음을 흡수하고 내부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했다.
정정희(81)씨는 공예적 실용성을 넘어 순수예술로 구현한 한국 최초의 태피스트리 작가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각각 직조한 조각을 입체적으로 이어 붙여 조형미를 살린 것이 특징이다. 그의 세 번째 개인전, '태피스트리의 거장, 정정희'전이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10월 20일까지 열린다.
서울대 조소과를 나온 작가는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젊은 여인'으로 특선을 하는 등 촉망받는 조각가였다. 그러나 결혼과 임신 등으로 조각 작업이 어려워지자 방향을 틀었다. 국내 최초의 디자인 진흥기관인 한국공예시범소의 외국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해 섬유예술의 거장으로 불리던 잭 라르센 미국 필라델피아 뮤지엄 미술대학 교수에게 태피스트리를 배웠다.
"직조작품과 조각은 많이 닮았어요. 둘 다 양감, 질감, 음영이 살아 있거든요. 하지만 조각에 없는 풍부한 색이 있어 더 재미있지요." 정 작가는 조형미와 더불어 색 표현에 많은 공을 들인다. 조각 이전에 회화를 공부한 영향이 적지 않다. 그라데이션(gradation·농담법) 효과를 위해 여러 색깔의 얇은 실을 꼬아 만들고, 가급적 한번 사용한 색은 다시 쓰지 않는다.
미술평론가 조은정씨는 "태피스트리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일도 드물지만, 여러 분야를 섭렵하고 자신만의 형태와 색상을 창안한 정정희 작가의 존재는 한국 섬유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평했다. (02)3217-6484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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