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강원 강릉시 청소년 해양수련원 주변이 갑자기 황토색으로 변했습니다. 때 아닌 황사가 온 건 아니었구요. 세계적 상용차 메이커인 다임러사가 주최한 특수차량 '유니목(UNIMOG)'의 제설 시연 행사였습니다. 가을에 눈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최측은 1,000만원 어치의 톱밥 가루를 준비해 눈 치우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그런데 이 행사를 보러 온 사람들은 다 공무원들이었습니다. 국토해양부, 지방자치단체, 한국도로공사 등에서 온 200여명의 제설담당자들은 세계 최첨단 제설차량의 일거수일투족을 시종 주의 깊게 지켜봤습니다.
보통의 제설차는 일반 차에 제설 장비를 부착해 만든 개조차량입니다. 쌓인 눈을 밀어내거나 퍼내는 역할을 하죠. 이 차들은 1㎙ 이내의 눈이 쌓였을 때는 제 기능을 하지만, 그 이상의 폭설이 내리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아이 키 만큼 쌓인 눈을 밀어내는 식으론 치우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사실 예전엔 보통의 제설차로도 충분했습니다. 강원 산간지역 말고는 1㎙ 넘는 폭설은 거의 없었지요. 그런데 최근 들어 대형 눈 벼락이 쏟아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지난 겨울 폭설 때 기존 제설차로 무작정 밀어내다 보니 빙판이 생기고 아예 고속도로에 차들이 갇혀 버리는 대란이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시연을 한 유니목은 대형 폭설에 강한 차량이라고 합니다. 얼어붙은 눈을 갈아서 날려버리기 때문이죠. 실제 올 1월 강원 지역에 폭설이 내렸을 때, 유니목은 큰 활약을 했습니다. 전국의 유니목이 강원도에 집결해 미시령 일대에는 10㎙마다 유니목이 한 대씩 작업을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고 합니다.
현재 국내엔 유니목이 약 500여대 가량 들어와 있습니다. 하지만 기상이변으로 인해 예상 못한 폭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안 다임러측은 '고객'인 공무원들을 초청해 시연 행사까지 갖게 된 것이지요.
한때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겨울이 너무 따뜻하고 눈이 너무 안 와서 걱정이었는데, 요 몇 년 사이엔 난데 없는 폭설과 대한파가 겨울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게 다 기상이변 때문인데, 어쩌다 우리나라에 '제설차 특수'까지 생기게 되었는지 씁쓸하기만 합니다.
강릉=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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