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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박원순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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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박원순의 함정

입력
2011.09.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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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호스. 경주에서 예상 밖의 우승으로 사람들을 화들짝 놀라게 할 수 있는 말을 일컫는 경마 용어다. 머리 꼭꼭 숙인 채 숨어 있지만 선거에서 한번 일을 칠 수 있는 후보도 이렇게 표현한다. 사실 경험칙으로 보면 경마에서 다크 호스가 우승할 확률은 아마 10% 이하일 것이다.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다크 호스 가운데 이겼다는 경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외에는 좀체 못 봤다.

그런데 비로소 다크 호스가 승리하는 기념비적 사건이 벌어질 모양새다. 바로 박원순 변호사 얘기다.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서울 시민 600명을 상대로 실시한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화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변호사는 한나라당 나경원 최고위원, 이석연(전 법제처장) 변호사와의 가상 대결에서 각각 50%대 31.7%, 59.8%대 14.8%로 앞섰다.

지지율이 그저 그런 수준이었던 그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단일화 이후 안 원장의 표를 먹으며 단박에 1위로 올라섰다. 선거가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의 여론조사 결과이고 보면 여기서 극적으로 뒤집힐 가능성은 크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에게 쏟아내는 뜨거운 지지를 목도하며 맘 한 켠이 불편해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바로 이 지지가 박 변호사 자신이 스스로 일군 진짜배기 성과가 아니라 안 원장의 지지가 옮겨 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단일화라는 정치 공학 놀음으로 지지를 높이는 불온한 한국 정치의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안 원장에 대한 지지가 그에게 갈 만큼 두 사람이 통일성과 일체성을 지니느냐도 의문이다. 사실 안 원장은 중도 실용에 가깝고, 박 변호사는 진보와 친연성이 높다. 안 원장의 이미지에 기대 그에게 한 표를 던져 놓고 나중에 속았다고 할 사람들이 꽉 찼다.

공약이 21일 제시됐지만 그 전부터 그에 대한 지지율이 치솟았다는 점도 좀 안타깝다. 박 변호사는 참여연대를 이끌면서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참여연대는 시민운동 조직이고 그가 이제 하려는 것은 정치 활동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그의 정책을 판단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정치인으로서의 공약을 어느 정도 파악한 뒤 그를 지지하는 것이 옳은 순서다. 그런데 전후좌우 재지 않고 이런 식으로 무조건 쏠려 버린것이다. 공약 무관심의 한국 세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가 참신하다는 맹목적 믿음도 좀 걱정된다. 사실 정치판에 처음 나온 사람은 잘 모르기 때문에 뭐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사람 중에 실제로 정책과 도덕에서 모두 참신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뉴 페이스가 무조건 참신하다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유권자들이 새로움을 갈구하는 것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 때문일 것이다. 무능력하고 썩은 기성 세력을 가뿐하게 갈아엎을 사람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 심정 100% 이해가 된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정확하게 판단하지 않고 분위기에 이리저리 쏠리다 보면 기성 정치인과 판박이인 사람을 새 얼굴이라고 찾고도 모를 수 있다. 이제 좀 냉철해지자.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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