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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수천억 탈세' 선박왕 영장 잇단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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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수천억 탈세' 선박왕 영장 잇단 기각

입력
2011.09.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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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왕'을 단죄하겠다고 벼르던 검찰과 국세청이 체면을 구겼다. '한국의 오나시스'로 통하는 시도상선 권혁(61)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최근 잇따라 기각됐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달 1일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다"며 권 회장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더니, 검찰이 시민위원회 결정을 토대로 재청구한 영장을 지난 20일 또 기각했다. 거침없는 수사로 권 회장을 밀어붙이던 검찰의 행보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다섯 달 동안 진행된 선박왕과 검찰ㆍ국세청의 치열한 싸움이 또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1라운드: 권혁 vs 국세청

지난 4월11일 국세청은 권 회장에게 해외탈세 규모로는 사상최대 금액인 4,101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고 발표했다. 개인정보보호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국세청이 특정 개인의 세금추징 사실을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 만큼 사안이 중대하고 조사를 완벽히 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해석됐다.

사람들은 그 동안 일반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 사업가'에게 재벌 회장을 능가하는 엄청난 세금을 추징한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교묘한 탈세 수법에 또 한 번 놀랐다. 시도상선의 총 자산은 10조원, 권 회장 개인재산만 해도 1조원 가량으로 추정될 정도로 그는 지인들의 선망의 대상인 알짜 기업가였다.

하지만 국세청의 시각은 달랐다. 권 회장은 국내에 거주하며 사업을 해오면서도 비거주자로 위장해 세금을 내지 않았고 해외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1조원 가까운 소득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국세청 발표대로라면 권 회장은 성공한 '선박왕'이 아니라 파렴치한 '탈세왕'이다. 국세청은 탈세수법을 상세히 묘사한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하며 '한 건' 했다는 듯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선박왕의 방어도 만만찮았다. 그는 조세심판원에 세금 불복 청구를 제기하는 한편,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반격에 나섰다. 권 회장이 평소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점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인 행보였다. '국내에 180일 미만 거주한 비거주자이기 때문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한국 조선소에 5년 동안 3조원이 넘는 배를 발주했고 매년 100억원 이상의 보험료를 한국 기업에 납부하는 등 오히려 한국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이것이 그가 내세운 논리였다.

사안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가자 국세청은 조바심이 났다. 사상 최대 규모의 세금을 추징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건만 탈세 혐의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다를 경우 거센 후폭풍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쯤 되자 올해 국세청 농사는 시도상선 수사에 달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당연히 국세청은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2라운드: 권혁 vs 검찰

석 달 동안 내사를 진행하던 검찰은 7월13일 시도상선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하며 권 회장에 대해 선전포고 했다. 권 회장도 선박왕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변호사들을 선임하며 맞섰다. 안강민 전 대검 중수부장과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 정진영 전 인천지검장 등 검찰 고위 간부 출신 변호사 3명도 합세했다. 이들 중에는 선임계를 내지 않고 활동한 변호사도 있어 한때 논란이 일었지만, 권 회장은 이들 전관들에게 억대의 수임료 제공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앤장과 전관 변호사들을 등에 업고 방어에 나선 권 회장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 수사팀 사이에선 자연스럽게 불만이 터져 나왔고 구속수사 의지를 불태웠다. 호화 변호인단이 구성된 상황에서 권 회장을 불구속 기소할 경우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쏟아질 것이 뻔했다.

검찰은 결국 2,2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포탈하고 회사 돈 9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권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권 회장 아들의 병역비리까지 들춰내 권 회장을 압박했다. 하지만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수사동력이 떨어졌다. 특히 이상훈 대법관의 친동생인 이광범 변호사가 영장실질심사 변호를 맡아 뒷말도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 전관은 넘었는데 법원 전관은 못 막았다"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때마침 지난달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수사 책임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검사가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되자 일각에선 그 이유를 시도상선 수사와 연결해 해석하기도 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검찰 출신 전관들이 수사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듯이 보도한 적이 있다. 이들 전관 중 한 사람인 정진영 전 검사장이 검찰 인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되면서 이 부장검사가 '괘씸죄'로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이 '좌천설'의 개요다.

선박왕 수사를 두고 이처럼 갖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은 그 만큼 이번 수사가 갖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권 회장과 검찰, 최종 승자가 누가 되든 패자 쪽은 내상이 매우 클 것 같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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