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을 갈지도 않는다. 마른 땅에 그냥 볍씨를 뿌린다. 농약도 비료도 쓰지 않는다. 씨를 뿌려놓고 수확만 한다. 그래도 생산성은 높다. 게다가 쌀은 오히려 비싸게 팔린다. 이게 '태평농법'의 신기한 비결이다.
중학교를 중퇴한 뒤 경남 하동에서 30여년 간 태평농법을 보급해온 이영문(57)씨는 "자연과 함께 순리대로 농사를 짓는 것이 가장 효율이 높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갈수기에 물을 끌어다 논에 모를 심으면 장마 때 물이 넘쳐 홍수를 맞을 수 있다고 한다. 그저 우리 기후조건에 맞춰서 농사를 지어야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유전자 변형을 하거나 교잡종, 외래종 등도 우리 땅에는 맞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는 요즘 경남 사천시 서포면 비토리의 외딴 섬인 별학도에서 토종식물을 재배하면서 종자 연구를 하고 있다.
_ 태평농법이 뭔가.
"물리적으로 땅을 갈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제초도 필요 없다. 또 재배 시기를 한국 기후조건에 맞춰서 순리대로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를 보면 곡창지대인 호남에 쟁기가 없었다. 하지만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땅을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쟁기는 당초 산간지에 소를 이용해서 돌을 빼내고 흙을 옮기는 용도였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우리는 땅을 갈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 그래야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 자란다."
_ 투입을 적게 하고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이 좀 모순 같다.
"한국 농업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다. 지금은 쌀값보다 쌀 생산비가 더 들어간다. 사실상 적자를 보고 있지만 농민들은 자기 인건비와 땅에 대한 투자비용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남는 것으로 착각한다. 언젠가는 우리 쌀 가격이 내려가고 외국 쌀은 가격이 올라갈 것이다. 그러면 현재도 적자인 쌀농사의 경쟁력이 없어진다. 쌀 생산비에서 가장 크게 차지하는 비용이 경작비용이다. 땅을 갈고 써레질해서 모 심는 비용이다. 이 과정만 없어도 절약을 할 수 있다.
또 우리 쌀 농업은 단순 식량안보 차원을 넘어서 홍수방지 기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방식의 농사는 홍수를 부추긴다. 5월에는 한국이 갈수기다. 갈수기에 지하수를 끌어다가 논에 모를 심는다. 하지만 6월 하순 장마가 오면 방류를 하지 않으면 논두렁이 다 터진다. 보리나 밀 수확시기에 마른 볍씨를 파종해야 한다. 그러면 곧 장마철이 오기 때문에 벼가 잘 자란다."
_ 태평농업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농업기술센터는 농자재를 만드는 곳에서 지원을 받는 기관이다. 비료도 많이 써야 좋고 제초제도 써야 되고 풀이라도 있으면 잔소리하고, 병이 있어도 큰일 난 것처럼 막아줘야 한다. 내가 농약과 비료를 사서 쓰지 않는 것만 해도 그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는다. 지금은 나아졌다. 옛날에는 내 말을 자기들이 이해를 못한 것조차 꼬투리를 잡고 시비를 걸었다. 지금은 그들도 내가 가을에 수확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란다. 오염된 것을 피해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급자족 형태로 태평농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_ 왜 외딴섬에서 식물을 재배하나.
"육지에서 할 때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몰래 가져가버려 하루 몇 종씩 잃어버렸다. 감시 카메라를 설치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 작은 섬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체계가 잡혔다. 종자 보존과 토착화 시험 등을 하고 있다. 6,700여 평에 1,000여 종 된다."
_ 종자 보관도 문제인가.
"교잡종 등은 씨앗을 받아 뿌리면 원래 심었던 품종이 아닌 다른 품종이 나온다. 1회성 품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자를 매년 따로 사야 한다. 우리 종자는 점점 없어진다. 앞으로는 종자 값뿐 아니라 로열티를 내야 할 상황이다. 사람이 만든 품종이 아닌 자연 품종으로 먹고 살자는 취지다."
_ 온난화 대체작물 연구도 성과가 있나.
"온난화 대체작물이라는 것은 여기서 토착화해야 하는 작물이다. 열대기후처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겨울도 스스로 날 수 있어야 토착화가 되는 것이다. 올리브 나무처럼 결과가 나온 것도 많다."
_ 원래는 농기계 수리점을 했다던데.
"어릴 때부터 기계에 취미가 많았다. 기계 개발도 많이 하고 수리도 했다. 지금 우리가 쓰는 기계는 일본제가 많다. 일본의 화산재 토양에 적합한 것이라 우리 화강암 토양에는 잘 맞지 않는다. 작물은 안 자라고 풀만 많이 난다. 우리 토양에 맞는 기계를 개발하면서 실험을 해보니 땅을 갈지 않는 것이 훨씬 좋았다. 이게 태평농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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