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김성중 지음/문학과지성사 발행ㆍ332쪽ㆍ1만1,000원
땅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허공으로 떠올라 투명하게 사라지는 세계. 노동할 곳이 없지만 소년의 성장판은 닫히지 않고 아이를 낳을 세계가 사라지는데 소녀는 달거리를 거르지 않는다. 소녀는 이렇게 묻는다. "사라지는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성중(36)씨의 단편 '허공의 아이들'의 한 대목으로, 환상적 세계를 무대로 하지만 그 질문은 뼈아픈 현실을 가리킨다. 9편의 단편이 실린 그의 첫 소설집 <개그맨> 이 던지는 세계가 그렇다. 둥실 허공으로 날아갈 듯 가벼우면서도, 이상한 무게감에 가라앉는 느낌이다. 표제작 '개그맨'에서 '나'의 옛 애인인 개그맨이 던지는 말 같이. "난 웃을 수 없어서 웃기는 사람이 된 것뿐이야, 우스운 얘기지?" 개그맨>
이 소설이 가볍다면,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다채로운 세계를 막힘 없이 활주하는 경쾌한 상상력 때문이다. '그림자'는 서로의 그림자가 뒤바뀌어 사람들의 성격마저 바뀌는 혼돈의 섬을 그린다. '버디'에서는 평균 수명이 140세로 늘어난 미래를 다루고, '머리에 꽃을'은 모든 시민들이 탈모가 된 후 그 머리에 핀 꽃의 아름다움에 따라 우열이 결정되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등단작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는 어느 날 말을 걸어온 의자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식.
문학평론가 우찬제씨는 이런 작가의 상상력을 일러 '역동적인 허공의 만화경'이라 부른다. '자질구레한 일상을 섬세하게 해부하기 위한 현미경 같기도 하지만, 현실너머 광활한 허공을 탈주하는 마법의 거울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소설은 또한 무겁다. '그림자'에선 뒤바뀐 그림자들의 소동을 통해 정체성을 잃은 현대인의 광기를 날카롭게 그리고, '개그맨'에선 남을 웃기면서도 자신은 웃지 못하는 개그맨의 슬픔을 담아내는 등 작품 전반에 우리 현실과 삶에 대한 성찰이 묵직하게 깔려 있다.
2008년 서른 셋의 다소 늦은 나이에 등단한 김씨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한번도 글재주로 주목 받은 적 없었고 작가가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며 "서른 두 살 때 어렵게 첫 소설을 쓴 후에 신기하게도 이야기의 입자가 절로 달라 붙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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