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로 살아보기/크리스토프 코흐 지음ㆍ김정민 옮김/율리시즈 발행ㆍ288쪽ㆍ1만5,000원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의사소통의 기술 혁신은 인류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개인의 이동성이 보장되는 등 생산성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하지만 통신수단에 종속되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의 크기도 만만치 않게 커졌다.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의 발상은 여기서 출발한다. '디 차이트' '슈피겔 온라인' 등 독일 주요 매체의 프리랜서 기자이자 파워 블로거인 크리스토프 코흐는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비상사태"를 겪는다. 한시의 지체 없이 즉각 600유로에 상당하는 2년 약정 조건의 USB모뎀을 사 오면서 저자는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인터넷에 중독되었는가. 그리고 그는 인터넷과 휴대전화 없이 지내는 실험을 시작한다. 책은 그가 '인터넷과 스마트폰 없이 오프라인으로 지낸 40일'(부제)의 생생한 기록이다. 아날로그로>
예상대로 실험은 첫날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저자는 온라인 뉴스를 확인하는 대신 오래된 친구에게 유선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으로 하루를 열리라 마음 먹지만, 친구의 번호가 떠오르지 않는다. 필요한 모든 전화번호를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은 탓이다. 세금 정산을 위해 자신이 다녔던 두 도시 간 주행거리를 계산하는 일도 낯설기만 하다. 인터넷의 거리 자동계산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인간에게 암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인터뷰 약속을 잡아 놓은 학자가 어느 분야의 전문가였는지 헷갈려 단 5초만이라도 인터넷을 사용하고 싶어진다. 심지어 그 전문가는 자신의 저서에 최신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권위자로 언급한 적도 있는 학자인데….
이 같은 불편을 견디며 실험을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얻은 것도 많다. 사소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일일이 책과 신문을 뒤져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더 많은 시간이 생겼다. 5분마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친구의 날씨에 대한 감상이나 이메일을 확인하는 대신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느긋함이 찾아왔고 우정도 질적으로 달라졌다.
물론 그는 과일이나 야채의 맛을 새롭게 알게 됐지만 긍정적인 효과가 길게 지속되지 않았던 단식의 경험과 비교하며 도전이 끝난 지 2주 만에 디지털 중독에 가까운 옛 습관을 되찾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된 점이다.
단순한 일기 수준에 그치지 않고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 인류학자 로빈 던바, 심리학자 로버트 레빈 등을 인터뷰한 내용을 녹여 넣어 디지털 사회의 현주소와 그 폐단에 대한 공감도를 높인 게 특징이다. '일주일 중 하루는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날로 정하라' 등 스트레스는 줄이면서 디지털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생활의 팁을 정리해 놓은 에필로그도 인상적이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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