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값이 물가 상승을 주도했다."
이달 1일 정부가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비 5.3%)을 발표하며 내놓은 설명이다. 전달에 비해서도 0.91% 올랐는데, 그 중 절반이 넘는 0.49%포인트를 상승시킨 주범이 채소라는 것이다. 유난히 길었던 장마와 집중호우 탓에 채소값이 급등했지만, 물가에 반영되는 전체 489개 품목 중 채소(26개)의 비중(가중치)은 1.45%에 불과해 선뜻 이해가 안 간다.
물가 가중치는 상품구입 빈도나 중요도 등을 감안한 것으로, 농축수산물(전체 71개 품목)의 비중은 8.84%다. 개인서비스(34.26%)의 4분의 1이고, 단일 품목으로 비중이 가장 높은 집세(6.64%) 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물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뭘까.
먼저 농축수산물은 다른 품목에 비해 등락폭이 매우 크다. 수급 상황이나 기상 조건에 따라 며칠 사이에도 값이 두세 배로 오르거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 등락률이 큰 만큼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도 이를 상쇄하는 효과가 있다. 예컨대 1개에 1,000원인 무가 2,000원으로 오르면 상승률이 100%지만, 전셋값 1억원이 1억1,000만원으로 오르면 상승률은 10%에 그친다. 무의 변동 금액은 전셋값의 0.01%인데 상승률 효과는 10배나 높은 셈이다.
또한 집세(전ㆍ월세), 공공서비스(난방ㆍ전철ㆍ시내버스 요금 등), 개인서비스(외식비ㆍ영화관람료 등)는 연초나 연말에 한 번 오르면 이후 1~3년 간 변화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안정돼 있다. 가격 변동이 심한 농산물이 상대적으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상품 성질별로 올해 물가상승률에서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집세는 매달 0.02~0.06%포인트 기여해 가장 미미했고, 공공서비스(-0.12~0.14%포인트), 개인서비스(0.06~0.26%포인트)도 농축수산물(-0.45~0.44%포인트)에 비해선 기여도가 상당히 적었다. 그나마 석유류가 포함된 공업제품(0.05~0.41%포인트)이 이집트, 리비아 등 중동지역의 정세 불안이 촉발한 유가 급등기에 농축수산물 보다 기여도가 높았다.
통계청 관계자는 "원래 가격 변동성이 큰 농축수산물이 올해는 구제역과 한파, 집중호우 탓에 그 영향이 더욱 커졌다"며 "그래서 물가 대책도 주로 농산물값 안정에 맞춰진다"고 설명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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