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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치 기억' 되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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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치 기억' 되살리기

입력
2011.09.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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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명품 패션브랜드'휴고 보스(Hugo Boss)'가 나치에 협력한 어두운 과거를 뒤늦게 사죄했다는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이 회사는 설립자 후고 보스(1885~1948)의 나치 부역을 규명한 책의 출판에 맞춰 사과문을 내놓았다. "나치 시절 강제노동으로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요지다. 이 회사가 출판을 지원한 책은 설립자 후고 보스가 나치 열성당원으로 일찍부터 '갈색 셔츠'등 나치 유니폼을 납품했고, 전쟁 중에는 강제 동원된 폴란드와 프랑스 인력 180명을 착취했다고 밝혔다.

■ 언뜻 글로벌기업의 용기 있는 고해(告解)로 여길 만하다. 110개국 6,102 곳에 매장이 있는 후고 보스(한국에서만 휴고 보스다)는 나치 부역 논란으로 이미지 손상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가 오랜 독일 기업치고 나치 과거에서 자유로운 경우는 드물다. 폭스바겐 아우디 BMW 다임러 벤츠 등이 대표적이다. 나치 노조가 설립한 폭스바겐은 전쟁 중 유대인을 비롯해 1만5,000명을'노예노동'에 동원했다. BMW는 전투기, 크루프(Krupp)와 지멘스(Siemens)는 대포 등 무기 생산에 대규모 강제동원 인력을 썼다. 후고 보스의 허물은 작은 편이다.

■ 실제 후고 보스는 1999년 강제노역 외국인을 위해 독일 기업이 모은 51억 달러 보상기금에 150만 달러를 냈다. 당시 미국 유대인 단체가 앞장서 강제노역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미국 법원에 잇따라 제기했고, 독일은 강하게 반발했다. 전후 여러 형태로 500억 달러가 넘는 보상금을 지불했는데 개별기업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항변이었다. 그러나 언론과 미국 정부까지 압박을 가하자 지레 손을 들었다. 독일의 브랜드 이미지를 걱정하는 현실론이 세계경제 격동기에 독일을 견제하려는 음모라는 반발을 눌렀다.

■ 당시 논란을 떠올리면, 이번 일도 어쩐지 공교롭다. 때 마침, 영국 가디언의 탁월한 칼럼니스트 사이먼 젠킨스는"유럽을 위기에서 구한다며 새삼 나치 과거를 꺼내 독일을 자극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썼다. 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이 독일의 손 큰 지원을 요구하면서 은연중 지난 세대의 과오를 들먹이는 것은 용렬하다는 지적이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과 IMF(국제통화기금)도 독일을 압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러고 보면, 후고 보스는 오래 전 이탈리아 마르조토(Marzotto)가 인수해 발렌티노 패션그룹으로 통합됐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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