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 교육과학기술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서 2단계 '국립대 선진화 방안' 골격을 공개했다. 대학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대학운영성과목표제와 학장(학과장) 공모제 도입 등이 주된 내용으로, 학내 구성원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한다고 한다.
30년 가까이 대학에 있는 평범한 교수로서 무겁고 비통한 심정이다. 의사결정구조부터 보자. 보통 정책결정은 장관 자문성격의 위원회에서 장관이 제시하는 기본방침이 심의된다. 위원회 심의결과는 장관의 정책 결정 근거가 된다. 위원회는 장관의 기본방침을 핑계삼고, 장관은 위원회 심의내용을 정책의 '객관적' 근거로 제시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정책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
국립대 선진화 방안은 어떤가. 이 방안은 각 국립대 사무국장으로 구성된 회의체인 '국립대 선진화 추진단'에서 결정됐다. 하지만 사무국장은 각 대학의 진정한 구성원으로 볼 수 없다. 교과부가 대학에 파견한 감독관으로 행세하고 있는 이들이 정책 방향을 세우고 그 실천을 총장이 수행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교과부 관리, 감독하에 대학 구성원 목소리는 배제된 채 대학 정책이 마련됐다는 얘기다.
교과부가 내건 총장직선제 폐지 근거 근거는 폐해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서 일어난 선거 관련 부작용을 빌미로 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 폐해는 제도폐지 근거가 아니라 개별대학 구성원이 개선해야 하는 과제다. 그들이 폐해로 주장하는 총장선거는 총장후보들이 대학 전반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방책을 제시하는 장이다. 선거를 계기로 모든 구성원 자신이 소속된 대학의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 하기도 한다. 총장임명제, 간접선출방식 폐해는 우리가 과거 충분히 경험했고, 그 때문에 많은 의견에 따라 총장직선제가 도입됐다. 총장직선제는 민주주의 대의를 따른다. 총장직선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하고 믿지 않는 것과 같다. 효과적인 국가시책을 앞세워 민주주의라는 대원칙을 부정하는 것은 독재와 다름없다.
대학운영성과목표제 역시 문제다. 평가결과에 따라 행정적, 재정적 지원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요지인데 이는 대학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함이다. 이런 내용은 국립대 법인화 법안이 담고 있는 세부적 사안과 다를 바 없다. 교과부는 국립대 다수 의견을 무시하고, 법안 세부적 내용을 분리해 가능한 수단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정책입안과 강행이 고등교육의 올바른 변화와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뻔한 일이다.
대학의 본질은 연구와 교육이다. 참된 연구와 교육의 전제는 교수와 학생의 순수한 자발적 의지에서 가능하다. 쉽게 말하면 스스로 즐기면서 하는 공부가 진짜다.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에 대해 '이렇게 하면 돈을 더 주겠다'는 방식으로 강제하는 것은 치졸한 발상이다. 가령 자녀에게 '몇 등 하면 어떻게 해줄게'라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자녀를 망치는 것과 같다. 대학 자율과 자치를 중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연구와 교육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대학 목소리도 절실하다. 국립대 총장들부터 교과부 독단적 주장에 대해 대학구성원 의사를 대표해 의견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대학은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개별 대학 이익을 따져 각 대학 대표들이 침묵하고 있는가. 구성원들 의사를 존중해야 할 총장이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과부의 행정적 하위 공공기관 관리자로서 상급기관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가. 내 밥그릇 챙기기 위해 그러한 것인가. 아니다. 대학현실에 대한 개인적 책임감과 자괴감으로 이 말을 해야 한다.
이제 진정 고등교육의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해 교과부는 대학의 진정한 목소리를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총장을 위시한 대학 구성원도 대학 문제에 자신의 판단을 당당하게 밝혀야 한다.
강호신 경상대 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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