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결정권자 모두가 신뢰를 잃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가운데 정책 당국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2일(현지시간) 분석했다. 돈을 대줘야 할 중앙은행은 이미 실탄이 떨어졌고, 미국과 유럽의 정상들은 정쟁에 몰두하는 등 자국 문제에 치여 문제 해결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먼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내 반대 세력의 반발을 무마하기에도 바쁜 상황이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당시 선진국들은 찰떡공조를 과시하며 사태를 해결했지만 이번 유럽 위기에서 미국은 "단호하고 결정적 조치를 취하라"고 훈수만 할 뿐 실질적 행동은 하지 않고 있다.
유럽 정책당국자들도 마찬가지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으며, 유럽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야 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잇따른 지방선거 패배로 유로 지원을 과감하게 하기 어렵다. 잇단 성추문 스캔들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도리어 국가신용등급 강등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을 정도다.
유럽 각국의 공동 이익을 대변할 의사결정기구가 없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대신 돌려막기식 대처에 급급하는 것도 사태를 더 어렵게 한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로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가식'을 꼽았다. 유럽 지도자들은 그리스 정부가 파산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부정해 재정위기를 전이시켰다는 것이다.
미국 온라인 외환중개업체 GFT포렉스의 리서치담당 이사 케이시 리언은 "정책당국자들이 경기부양에 실패하고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2008년과 같은 글로벌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제연구센터의 로버트 매드센 선임연구원도 "정부기관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곳곳에서 추락하고 있다"며 "현재의 위기는 1930년대 초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정치권이 힘을 잃으면 2, 3년 후 위기가 닥쳤던 패턴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책당국자들의 발언이 먹혀 들지 않는 것도 최근 자주 볼 수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경기부양 방안을 발표한 21일 주가는 오히려 폭락하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선아메리카 자산운용의 펀드 매니저 마이클 체아는 "시장이 연준 발표 이후에도 부정적으로 반응한 것은 처음"이라며 "끔찍한 징조"라고 평가했다.
정책당국자들이 이젠 지원하고 싶어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BBC방송은 "미국과 유럽의 지도자들이, 시장이 요구하는 조치를 도입하려고 해도 각국 정치 상황상 그렇게 하기 힘들다"고 보도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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