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장을 받고 2시간도 안 돼 달려왔으니. 시쳇말로 잉크도 마르기 전에 감사부터 받겠다는 꼴이 됐다. 의원들이 '풋 장관''무늬만 장관''왕초보'라며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를 거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아무리 문화재청장을 거쳤고, 내정과 임명 사이에 시간이 있었다고는 하나 청문회 준비로 정신 없었던 최광식 장관이 문화정책 전반을 파악했으면 얼마나 했을까. 더구나 남이 해놓은 것들이 아닌가. 국정감사 직전 장관 교체의 피치 못할 사정이란 것도 그렇다. 애초 마음은 콩밭에 두고 온 정치인을 지난번에 장관으로 기용한 자업자득이다.
■ 8개월짜리 전임 장관은 또 어떤가. 어제까지 장관이던 사람이 오늘은 정반대 입장인 국회의원으로 국정감사를 하겠고 떡하니 앉아 있다. 그나마 상임위를 환경노동위원회로 옮긴 게 다행이다. 전공대로라면 내가 한 일을 내가 감사하는 꼴을 보일 뻔했다. 그 역시 새 장관처럼'초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장관으로 있으면서 얼마나 환경과 노동정책까지 신경 쓸 수 있었을까. 그러니 기껏 한다는 얘기가 장관 시절 자신이 추진하려던"예술인들에게 사회보험을 적용하는 예술인복지법 제정, 문화콘텐츠산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반복하는 게 고작이다.
■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이 내놓은 대통령선거 공약집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2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서 문화정책은 달랑 다섯 쪽이다. 그나마 체육과 관광 분야를 빼고 나면 경제적 측면만 강조한 '문화 콘텐츠 개발과 지원' 하나뿐이었다. 아무리 당시 국가적 핵심과제가 경제 살리기였다고 하더라도 빈약하기 그지없다. 문화정책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다. 문화도 오로지 경제성과 일자리 창출이었다. 늦게나마 문화의 다양성과 정신적 가치, 복지성을 담은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일관성 부족과 조급성에 빠져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 '아바타'도 'K-POP'도 하루아침의 기적이 아니다. 외형적 성과주의에 빠지지 말고 문화정책 하나하나 꼼꼼히 준비하고 꾸준히 실행해야 문화콘텐츠 강국도 된다. 장관이 문제다. 8개월짜리 전 장관은 자신의 정치적 선전을 위한 업적 과시에만 집착했다. 그럼 '에스컬레이터 인사'란 말로 초고속승진을 스스로 인정한 새 장관은 어떨까. 국립중앙박물관장 시절, 자신이 준비한 박물관에서의 G20정상회의 만찬을 요란한 화보로 자랑하는 것을 보면, 그가 욕심 내는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모이는'조각보'역시 겉만 번지르르한 졸작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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