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 면목3ㆍ8동에 사는 강모(72)씨는 이달 초 여성가족부로부터 한 통의 서류를 받고 깜짝 놀랐다. 같은 동에 사는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사진과 신상정보를 담은 고지정보서를 보고서다. 초등학생인 손녀(8)와 함께 사는 강씨는 "우리 동네에 미성년자를 강제 추행한 성범죄자가 살고 있다고 하니 그 후로는 길을 가도 늘 눈을 부릅뜨고 다닌다"며 경악했다. 하지만 강씨는 "고지서를 받아보기 전에는 이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몰랐다"면서 "알고만 있으라는 건지, 어떻게 하라는 건지 고지서만으로는 잘 모르겠다"고 당황스러워했다.
지난 6월부터 실시된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신상정보 우편고지 제도는 올 1월 1일 이후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 확정 판결과 고지명령 선고를 받은 범죄자 정보를 여성가족부가 우편으로 각 가정에 알리는 방식이다. 범죄자와 같은 읍ㆍ면ㆍ동에 살면서 19세 미만 아동ㆍ청소년이 있는 가정이 대상이다. 고지서에는 성범죄자의 얼굴과 이름, 나이, 키, 몸무게, 실제 거주주소, 성범죄 요지 등이 담겼다.
하지만 실제로 고지서를 받아본 학부모들은 그 효과에 고개를 갸웃했다. 강북구 수유동에 사는 학부모 김모(37)씨는 "집 근처에 성범죄자가 산다는 걸 알아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며 "흐릿한 성범죄자 사진과 쓸 데 없는 통계만 알려주고 우리보고 알아서 조심하라는 얘기냐"고 되물었다. 고지서의 앞면에는 성범죄자의 신상정보가, 뒷면에는 지난 10년간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 특징 및 추세가 안내돼 있을 뿐이어서 당혹감을 느끼는 학부모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행동요령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정하경주 활동가는 "고지서에는 성폭력을 목격했거나 당했을 때 어디에 도움을 요청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 정말 필요한 정보를 담아야 한다. 정책 수립시 정부가 참고해야 할 통계만 나열해놓는 건 예산 낭비"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과 피해자의 가출 여부 관계'를 소개한 대목은 마치 청소년 가출이 성범죄의 원인이라는 오해도 준다.
느려터진 신상공개작업 속도도 문제다. 현재 여가부가 6월 17일부터 6차례에 걸쳐 해당지역 주민에게 고지한 성범죄자는 51명, 고지서를 받은 집은 14만8,123세대에 불과하다. 법원으로부터 고지 명령을 받은 성범죄자가 직접 관할 경찰서를 방문해 본인의 신상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1개월의 시한까지 두고 있어 그 사이 이사를 가거나 오는 경우에는 고지서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또 고지 대상이 19세 미만의 자녀를 둔 경우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20대 이상 여성이 있는 세대에는 고지서가 가지 않는 맹점도 있다. 물론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www.sexoffender.go.kr)에서 볼 수도 있지만 지번까지 상세하게 공개되는 우편 고지와는 달리 인터넷에서는 읍ㆍ면ㆍ동만 표시된다.
여가부 관계자는 "고지 명령을 받고도 법정 다툼을 더 벌이거나 미적대며 정보를 내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점차 고지 판결 비율이 높아지고 시스템이 갖춰지면 그 수가 부쩍 늘어날 것"이라며 "고지서에 담을 내용에 대해서는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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