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느 아파트에서 한 여인이 사라진다. 침대 시트를 흥건히 적신 피의 양을 보아선 살해된 게 분명한데 시신을 찾을 길이 없다. 경찰과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유력한 용의자인 남편 한철민(장혁)을 체포해서 기소한다.
변호사 강성희(하정우)는 "가망 없는 승부"라며 형량이나 줄여볼 요량으로 변호를 맡는다. 강성희가 사건을 파고들수록 이해하지 못할 검찰의 행태들이 드러나고, 순진무구한 눈빛의 한철민은 조심스럽게 결백을 호소한다. 담당 검사 안민호(박희순)와 강성희는 서로 "정의를 구현하겠다"며 법정에서 뜨거운 일합을 펼친다.
영화는 물음표를 끊임없이 제시하다 후반부 한꺼번에 궁금증을 풀어내는 형식을 취한다. 전반부 40분은 불친절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객들이 사건의 맥락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 시신 없는 살인에 대한 기소가 과연 가능한 것인가, 종잡을 수 없는 표정과 행동을 하는 한철민의 정체는 무엇인가, 검찰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한철민을 기소한 이유는 무엇인가 등의 의문이 빠른 템포에 박자를 맞추며 꼬리를 문다.
도대체 사건의 정체가 뭐길래라는 의문은 치열한 심문과 변론 공방이 펼쳐지는 법정 장면에서 조금씩 잦아든다. 과연 한철민에게 단죄가 내려질 것인가, 그가 무죄 판결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서스펜스를 형성하면서 흥미를 돋운다. 재판장의 선고 전후 사건의 퍼즐이 모두 맞춰지면서 전해지는 반전도 꽤 쏠쏠한 재미를 던진다.
범인을 잡기 위해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 검찰,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증인 매수도 서슴지 않는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의 모습이 씁쓸한 웃음을 준다. 꼼꼼하게 취재해서 대중적으로 풀어낸 연출력이 예사롭지 않다.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순 없지만 상업영화로선 제법 매끈하다.
하정우, 박희순, 장혁 등 주요 배우들의 앙상블이 좋다. 사건 브로커(성동일), 사무장(김성령), 부장검사(정원중), 재판장(주진모) 등 조연들도 조화롭다. 2008년 독립영화 '약탈자'로 주목 받은 손영성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2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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